공기업은 공공재와 공공서비스의 원활한 공급, 산업 진흥과 국제 경쟁력 강화 등을 이유로 설립, 운영되어 왔다. 민영화와 민간기업들의 빠른 성장으로 중화학 산업 부문에서 공기업의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에너지, 인프라, 금융, 방송・통신 부문에서는 여전히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학 분야의 많은 연구는 공기업이 민간기업과 비교해서 매우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공기업들은 특정 사업 분야에서 독점자로 행동하기 때문에 충분한 이익을 확보할 수 있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많은 채무를 안고 있어도 공공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구제해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도산의 위험도 전혀 없다. 그래서 공기업은 성과를 개선하고 비용을 줄일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많은 공기업들이 소위 신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정규 종업원에 대한 보호가 필요 이상으로 강하고, 급여 수준도 아주 높다. 이처럼 성과의 개선 없이 비용만 높이는 비효율적인 경영을 민간기업이 한다면 시장의 경쟁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도태당할 것이다. 이에 더해 공기업은 경영진의 선임과 운영에 정치권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은 부실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사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공기업 운영의 성공 사례를 한국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전의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현재 포스코)이다. 포항제철은 시작할 당시 국내 철강제품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고,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도 높아 국제 경쟁의 압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경영을 해도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박태준 회장은 비용 절감의 노력 없이 가격만 높여 이익을 확보하는 쉬운 경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박태준 회장은 정부로부터 다음 세 가지 조건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 첫째, 기계 장비, 원자재와 서비스의 구입에 대해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다. 둘째, 채용과 승진 등의 인사 문제에 정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셋째, 정치헌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조건하에서 박태준 회장은 국제적으로 검증된 최신의 설비를 사들이고, 일본의 철강회사인 신닛테츠로부터 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최고의 인재를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압력을 배제한 책임경영으로 포항제철은 국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철강제품을 국내 기업에 판매해서 한국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철강제품인 열연코일과 냉연코일에 대한 포항제철의 가격은 미국, 유럽, 일본의 철강기업 가격보다 10% 정도 낮출 수 있었다. 포항제철은 공기업이라도 경제 원리에 맞는 경영이 이루어진다면 민간기업에 뒤지지 않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포항제철뿐만 아니라 다른 공기업들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공기업들은 정치권의 자리 배분과 정규직 종업원들의 자리 보전에 치우쳐 원래의 설립 목적을 상실하고, 경제 원리에 맞지 않게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에너지, 인프라, 금융, 방송・통신 부문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고, 국민들의 생활에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인데, 이러한 방만한 경영으로 공기업이 부실해지면 국민들은 공공서비스 질의 하락과 가격 상승, 결과적인 세금 인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정부의 대규모 구제금융이 이루어지면 자원 배분을 왜곡시켜 경제 전체에 큰 손실을 끼칠 수 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설립 목적을 상실한 공기업의 개혁이 필요하다. 예전의 포항제철이나 현재의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처럼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비용 절감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어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 고용의 창출로 국민 후생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조치는 낙하산 인사로 경영진에 정치인 임명의 금지와 정규직 종업원에 대한 지나친 보호를 줄여야 할 것이다.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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