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 사석에서 이창호 국수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별명이 돌부처인지라 대화 나누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세계 최고 바둑 고수여서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더 길었던 듯하다. 치열하게 살아온 승부사와 지존의 느낌보다 오히려 온화하고 앳된 미소가 잘 어울리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원이 동양이고 철학적 가치관과 예의를 중시하며 19줄 바둑판에 삼라만상의 이치가 담겨 있다 하니 바둑을 단순한 오락으로 분류하기에는 도리가 아닌 듯싶다. 그런 바둑계에 2016년 3월은 매우 역사적이고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다. 대결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알파고가 4승 1패로 이세돌에게 승리했다.
최근 'AlphaGo-The Movie Full Documentary'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알파고 개발 과정과 이세돌과의 대국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기획물이다.
필자는 알파고의 놀라운 능력보다 외롭게 맞서 싸우는 인간 이세돌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국이 진행될수록 바둑을 매개로 어느새 인류를 대표한 그의 모습에 인간이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듯싶다. 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대중의 기대를 뒤로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알파고와의 패배가 자신의 은퇴를 결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바둑을 학문과 예술로 대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작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만의 가치관이 기계에 의해 부정되었을 때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왜 긴 세월 유독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바둑이 대중적이었는지 그 이유는 설명이 쉽지 않다. 다만 적어도 극동 3국에서 바둑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오랜 세월 전수된 온전한 형태의 문화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수반되었다고 한다. 알파고가 수천 년 이어온 문화의 속살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최근 유럽특허청이 인공지능(AI) 다부스(DABUS)를 발명자로 기재 출원된 특허를 각하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AI 전문가 스티븐 탈러 박사는 음식용기와 신호장치 관련 2건의 발명을 유럽, 미국 및 영국에 특허출원했다. 그 과정에서 해당 특허의 발명자를 DABUS로 기재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수행한 창작에 대한 특허출원 또는 저작권 이슈는 더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인공지능 자체를 발명자로 지정한 것은 최초이다. 이에 대해 유럽특허청은 기계는 법인격이 없어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기계는 발명에 대한 권리를 보유할 수 없으므로 고용 관계 또는 승계를 통해 권리를 이전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지능 수준과 관계없이 기계는 도구로 간주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아직 표면화된 경우는 없다. 다만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한 범정부 AI 지식재산 정책을 수립할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이다.
다양한 AI 관련 이슈에 대해 기본 원칙을 정립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지식재산 특별법 제정을 논의키로 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지식재산 분야의 경우 본격적인 인공지능 관련 법제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어느덧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상대로 우월한 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발명자의 지위에 도전하고 있으며, 관련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까지 거론되는 단계이다.
다행(?)스럽게 유럽특허청은 인공지능에 발명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특허청 보고서는 향후 반세기 정도가 지나면 인공지능이 법률의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까지 진화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법률의 변화 이전에 어떠한 방식이든 인간의 통념을 변화시키는 인공지능의 진화에 반드시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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