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분리수거 날이다. 집안일 중 유일하다 싶은 철저히 나만의 일이다. 지난주에는 게으름을 피우다가 분리수거를 한 주 걸렀다. 대가는 응징 수준이다. 분리수거한 쓰레기가 평소에 2배가 넘는다.
종이상자로 3박스와 비닐을 따로 모으고 잡병과 고철 등 분리 항목에 맞춰서 분리되어 있지만 한 번에 가져가기엔 좀 많다. 무게보다도 손이 모자란 상황이다. 최대한 한 번에 가려고 이렇게 저렇게 궁리로 쓸데없는 일에 머리를 썼다. 힘과 잔머리의 결과로 박스와 비닐가방의 개수를 5개로 줄였다. 거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고 현관문 앞으로 큰 박스를 먼저 내놓고 손으로는 비닐가방과 작은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발로 박스를 드리블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 18층부터 내려오던 숫자가 6층에서 한 번 정지한다. 위층에서 사람이 타는 인기척이 들렸다. 5층, 문이 열렸다. 안에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있는 손자와 배송업체분, 이렇게 세명이 타고 있었다. 문 앞에 펼쳐진 박스를 보면서 할머니는 앞에 공간을 내어주고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명절보다 더 나왔네"
"한 주 쉬었는데 엄청 많아요"라며 궁색한 변명 같은 대답을 했다. 얼굴이 약간 상기되는 느낌은 작업의 열기인지 민망함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어색한 공기가 더 흐른 뒤에 1층에 도착했다. 1층에서도 같은 작업이 반복이다. 지하로 가는 할머니께서 버튼을 눌러서 기다려주셨고 나는 재빠르게 주섬주섬 박스들을 끄집어냈다. 아파트 출입구를 지나서 분리수거하는 장소까지는 30m 남짓이다. 최대한 한 번에 많이 가져가고 다시 와야지 하는 욕심으로 큰 박스를 밑에 두고 작은 박스를 위에 포개어 놓은 다음 오른손에는 비닐백을 하나 들고 5개 중 3개를 들고 나왔다. 출입구 문은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는 감지센서가 있어서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반대일 때는 출입 키나 동호수와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보안이 있다.
퇴근길에 주차장을 들어가면서 본 분리수거 자루가 저녁 먹고 나온 사이에 키가 더 커졌다. 플라스틱과 종이류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보이는 볏짚단만큼이나 거대한 크기다. 플라스틱을 압축하고 빈틈을 찾아서 요리조리 끼워 넣었다. 나머지 박스 2개를 가지러 갔다. 발이 달린 박스던가? 폐지가 담긴 박스 2개가 출입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잠깐 뭐지? 했는데 궁금증은 아…. 작은 미소로 답을 얻었다. 아까 5개의 박스를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앞에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내가 3개를 가지고 간 사이에 나머지 2개를 출입구 쪽으로 놓아주신 것이다. 본인도 '알량한 남자일'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다니는 주민들이 불편할까 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작은 선의가 흐뭇했다.
생활 속 이웃만이 펼칠 수 있는 초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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