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명 10년 안 남은 원전 10곳…폐쇄 운명 맞을까

[탈원전에 신음하는 경북] 제2의 월성 1호기는 어디?
부산 고리 2호기 2023년 4월 8일 만료…경북 월성2호기, 한울1호기도 임박
정부 탈원전 정책에 연장 가능성 낮아…상가, 주택 대규모 공실 공동화 심각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한울 원전 1~4호기가 운영 중단 또는 건설 보류되면서 지역 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다.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2리의 원룸촌이 낮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한울 원전 1~4호기가 운영 중단 또는 건설 보류되면서 지역 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다.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2리의 원룸촌이 낮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정부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두고 검찰이 수사에 돌입하는 등 논란이 가중되면서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다른 원전들의 운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0년 현재 운전 중인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설계수명 만료일까지 10년이 채 남지 않은 곳만 모두 10곳. 탈원전에 관한 정부의 의지를 고려하면 대부분 수명 연장을 하지 않고 폐쇄될 가능성이 높다. 전력 수요 충당에 대한 우려는 물론 당장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받게 된 주민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 2030년까지 수명 다하는 원전 10기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폐쇄된 뒤 설계수명 만료 시점이 가장 가까워진 국내 원전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 2호기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1983년 4월 9일 최초 임계에 도달한 고리 2호기의 수명(40년)은 오는 2023년 4월 8일에 끝난다. 경북에서는 ▷월성 2호기(2026년) ▷한울 1호기와 월성 3호기(각각 2027년) 등의 수명 만료가 예정돼 있다.

이들 원전은 이미 폐쇄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의 사례처럼 안전진단과 시설보강을 거쳐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이 설계수명 만료 2~5년 전 정부에 재가동 보고서를 제출하고,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심사요건을 만족하면 허가를 받아 추가로 10년까지 원전을 운전할 수 있다.

2030년 이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전국 원자력발전소 목록. 자료: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
2030년 이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전국 원자력발전소 목록. 자료: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운전이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이고 있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 관련 검사에 대해 월성 1호기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운전이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이고 있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 관련 검사에 대해 월성 1호기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그러나 이미 한 차례 수명을 연장한 월성 1호기조차 조기에 폐쇄시킨 정부가 이런 선택지를 고를 가능성은 낮다. 이미 정부는 지난 2017년 10월 발표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따라 ▷노후원전 수명 연장 금지 ▷신규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 등 탈원전 절차를 밟고 있다.

향후 15년에 걸쳐 총 11기의 원전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노후 원전의 개보수 작업도 최소화하고 있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한수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근 3년간 남은 수명이 길지 않은 한빛 1·2호기와 고리 2호기에 대한 설비 개선 작업 52건을 원안위에 신청했다가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으로 노후 원전의 폐쇄를 놓고 벌어질 논란도 골칫거리다.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한수원이 설계수명 만료 2~5년 전에 정부에 재가동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당장 만료일이 3년도 남지 않은 고리 2호기는 물론 넓게 보면 월성 2·3호기와 한울 1호기, 한빛 1·2호기와 고리 2·3·4호기도 현 정부 임기 내에 재가동 보고서 제출 대상이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3·4호기를 짓기 위해 터파기를 마친 부지는 한수원이 신한울 1·2호기를 지을 때 미리 사 둔 것이다. 다른 용도로 쓰거나 전원구역 고시 해제 신청만 하면 된다"면서 "설계비 등 이미 버린 비용은 추후 관련법 보완을 마치면 한수원이 보전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아 비용 낭비가 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탈원전 정책을 확정한 상황에서 수명 연장 기회비용을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 '탈원전 속도전' 부작용 잇따라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원전 세수 및 파급 경제 효과에 의존하던 지역들이 대응할 시간도 없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한울 1~6호기에 신한울 1~4호기까지 계획돼 전국에서 원전 의존도가 가장 높던 경북 울진 주민들은 이미 파장을 체감하고 있다. 원전을 짓는 조건으로 확보한 2천800억원 규모의 대안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IMF 때도 불경기가 없었다"던 북면은 상가 주택에서 대규모 공실이 생기는 등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울진군 평해읍에 문을 연 전국 최초의 원자력 전문 고등학교인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역시 탈원전의 직격탄을 맞았다. 폐교 위기를 딛고 원자력마이스터고로 재탄생한 뒤 취업률 90% 이상을 보이며 높은 입학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고 경쟁률이 크게 감소했다.

송만영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교장은 "학교 이름에 '원자력'이 들어 있는 탓에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취업을 못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실제 한수원 취업자도 첫해 22명에서 지난해 5명으로 크게 줄었다"면서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해달라고 한수원 고위층에게 면담 의사를 전했지만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 고모(18·2년) 군도 "부산에서 울진 학교로 진학하면서 원자력 분야로 진로를 생각했었다. 주변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한수원이 아닌 한국전력 등 다른 진로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지역 사회가 탈원전 후폭풍에 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희국 울진 북면 발전협의회장은 "원전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보다 주민들이 잘 안다. 때문에 원전 수명이 다하더라도 지역 경제를 꾸릴 수 있도록 각종 수익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하지만 당장에 원전 의존도를 낮추기 힘든 상황에서 '탈원전 속도전'으로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천지원전이 들어설 예정이다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원전 건설이 백지화된 경북 영덕군 석리 일대 해안의 모습.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천지원전이 들어설 예정이다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원전 건설이 백지화된 경북 영덕군 석리 일대 해안의 모습.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 "특별법 만들어 지원해야"

주민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피해를 겪는 지역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큰 피해를 입은 폐광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일맥상통한다.

정부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위한 대기오염 저감 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석탄산업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347개에 이르던 탄광지역이 막대한 피해를 입자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탄광지역개발사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게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다.

탈원전 정책 역시 중앙정부 차원의 에너지 전환 정책인 만큼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주민들의 목소리다. 지난해 경북도가 만든 특별법안을 강석호 전 국회의원이 발의했지만, 상임위 계류 중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 강기윤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6월 특별법을 재차 발의했지만 본회의 통과까지는 갈 길이 멀다.

경북도 원자력정책과 관계자는 "가동 중인 전국 원전 24기 중 11기가 경북에 있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한울 3, 4호기 보류로 지역에 경제적 타격이 심한 상황"이라며 "새로 발의된 특별법도 지난 법안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지역이 받는 피해를 보상할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운이 걸린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 경제·과학적 관점을 배제하고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탈원전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인 '위험하다'는 말 자체가 과학적이지 않고 이념적이며 정치적"이라며 "50년간 세계적으로 500기 이상의 원전이 운전되고 직접 사고로 숨진 사람은 43명이 전부다. 조장된 공포를 심어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결국 1차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원전 인근 주민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요금 폭등으로 개별 국민들은 물론 기업의 수출 경쟁력에까지 피해를 준다. 국운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인데, 에너지를 '별것 아닌 문제' 정도로 치부하니 황금알을 낳는 닭을 죽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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