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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Insight] 광역권 행정통합 필요성과 한계

대구경북, 광주전남, 부·울·경, 대전세종, 인천+서울남부…왜, 행정통합일까?

경북도청 신청사(경북 안동) 매일신문DB
경북도청 신청사(경북 안동) 매일신문DB
석민 디지털 논설실장/ 경영학 박사
석민 디지털 논설실장/ 경영학 박사

광역권 행정통합 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올해 9월 21일 대구경북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광주와 전남도 행정통합 논의를 본격화 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부산과 울산, 경남(이하 부·울·경)은 행정통합 단계는 아니지만 '부·울·경 메가시티론'이 오래 전부터 상당한 힘을 받고 있으며, 가덕도신공항 건설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부권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불거진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서울 '일극' 중심주의에 따른 수도권 집중현상은 남부지역의 경제·사회·문화적 쇠퇴와 인구유출 등 국토의 극심한 불균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러한 추세는 저성장 시대의 도래로 말미암아 앞으로 더욱 가속화 할 것이고, 남부권은 '지역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남부권 광역지자체의 입장에서 '살아 남기 위한 수단'으로써 행정통합이라는 극단적 선택(?) 또는 고민(?)을 시작한 셈이다. '극단적인'이란 표현이 과도하지 않은 이유는 '현상유지'와 '안정' '내 자리 지키기'를 제1과제로 꼽는 경향이 있는 지방행정조직의 책임자가 '행정통합'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혁신적 사고의 결과이고, 또한 엄중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전세종 및 인천과 기타 수도권 도시 간 '수도권에 새로운 광역도시를 만들자'는 행정통합은 조금 차원이 다르다. 서울 및 수도권의 비대화와 발전, 행정수도 이전 등에 따른 낙수효과(spill over)로 인해 충청·강원권은 수도권에 흡수되며 강력한 중부경제권을 형성했다. 세종, 대전, 인천을 비롯해 발전에 가속도가 붙은 중부경제권의 핵심도시들이, 서울의 위성 또는 하청도시에서 벗어나 중심도시로의 새로운 도약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행정통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전국적 관심사로 부상한 '광역권 행정통합' 논의에서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비교적 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아마도 '가장 절박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전국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나타나는 현재의 상대적 낙후성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미래 또한 현재보다 더 암울하다는 점이다. 특히 청년인구의 지속적인 유출과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할 기술·혁신역량의 취약성은 '지방소멸'이라는 암담한 전망까지 나오게 한다.

"행정통합'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행정통합이 '국토 불균형 발전'을 해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만병통치약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더 나은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것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현실이다. 때문에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광주시장의 '입'에서 '행정통합에 대한 고민'이 나온 것이다.

대구시청사 별관.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옮겨가면서 옛 경북도청은 대구시청의 별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매일신문DB
대구시청사 별관.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옮겨가면서 옛 경북도청은 대구시청의 별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매일신문DB

대구경북의 사례만 되짚어 보더라도, 행정통합 논의 이전에 ▷경제협력(예, 대구경북상생위원회) ▷경제동맹(예,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경제통합(예, 광역경제권위원회)의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불행하게도 이같은 노력들은 기대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고, 지역은 더욱 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안 그래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행정구역 안에 국가공모사업이나 기업유치 등을 하기 위해 인접 광역행정기관 간 상살(相殺)의 제살깎아먹기 경쟁을 벌였다. '주민의 삶'보다는 행정관료와 정치인의 이해관계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런 부작용은 향후 더욱 극대화 할 전망이다. 저성장 시대의 도래로 국가 전체의 성장동력 자체가 크게 약화한데다가, 글로벌 경기침체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거대정부'가 부상하면서 정치인과 관료조직이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행정통합은 '분명'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행정통합의 걸림돌 역시 이 부문에 잠복해 있다. 기존의 행정체제는 관료사회를 비롯해 정치·사회적 기득권 세력을 형성해 왔고, 이들에게 있어서 행정체계의 변화는 기득권의 '박탈'을 초래한다는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행정통합을 한다고 해서 대체 뭐가 확실히 달라질 수 있나?"라는 의구심은 분명히 합리적인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 '기득권을 타파하자' '주민의 삶보다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나쁜 세력 추방하자' '전체를 보지 않고 소지역주의에 매몰되었다'라는 등의 접근은 바람직 하지 않다.

그래서 광역권 행정통합의 기본 방향으로 ▷행정서비스와 생활경제 등 주민 생활과 밀착된 부문은 시·군·구 자치조직에 일임함으로써 '풀뿌리 자치'를 강화하고 ▷통합광역지방정부는 산업과 미래형 인재양성(대학 포함) 등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공무원의 근무조건, 사회단체 등에 대한 변화도 가급적 최소화 시킬 필요가 있다. 광역권 행정통합은 '위기에 처한 지역이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영철 전남대 교수(행정학)는 "행정통합 논의는 (서울 일극 중심주의에 대한) '남부의 반란'이라고 할만하다. 행정통합이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암울한 미래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남부권 지역의 생존에 충분조건은 아닐지 몰라도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면서 "(오마에 겐이치의 '국민국가의 종말; 지역경제의 대두(1995)를 인용) 지역국가는 중앙정부의 적이 아니다. …완만하게 조정될 때 세계경제로 들어가는 관문인 지역국가는 가장 가까운 중앙정부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광역권 행정통합은 지역의 경쟁력을 회복시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국가의 성장동력을 보완하며, 서울과 수도권 만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를 글로벌 경제권으로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역권 행정통합의 고민은 서울 중심의 중부경제권에 버금가는 한반도 남부경제권 구축에 대한 고민과 이어져야 할 것이다.

최종 결정은 시·도 주민의 몫이다. 주민들의 충분한 이해와 공감대, 지지 없이 '광역권 행정통합'이 성공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시·도민이 단순히 참여하는 공론장'을 넘어 '시·도민이 직접 주도하는 공론장'의 필요성이 나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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