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경희 씨 부모님 김해근·김복순 씨

1950년대쯤 색동 한복을 입은 채 할머니에게 안겨 있는 김경희(가운데) 씨와 검은색 줄무늬 셔츠를 입은 아버지 김해근(뒷줄) 씨, 한복을 입은 어머니 김복순(오른쪽 두번째) 씨 등이 찍은 가족사진. 가족제공.
1950년대쯤 색동 한복을 입은 채 할머니에게 안겨 있는 김경희(가운데) 씨와 검은색 줄무늬 셔츠를 입은 아버지 김해근(뒷줄) 씨, 한복을 입은 어머니 김복순(오른쪽 두번째) 씨 등이 찍은 가족사진. 가족제공.

엄마와 아버지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아버지는 일본 강제 징용에서 돌아온 뒤 몸이 편치 않으셨다. 후유증으로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셔서 가슴이 미어진다. 오십 년도 더 된 세월이 흘렀지만 돌아가시던 날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나는 당시 중학교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정월 대보름 며칠 뒤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친정 나들이를 하러 가셨다. 안타깝게도 그때가 아버지와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돌아가시던 날 새벽, 아버지는 잠결에 "네 동생 잘 돌보고 엄마 잘 모시거라"라며 오빠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때의 아버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말씀하신 뒤 아버지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나셨다. 우리 아버지는 잔병치레 많던 하나 뿐인 딸을 언제나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가족들과 일가친척들 앞에서 크게 울어보지도 못했다. 울엄마는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은 숨긴 채 오로지 일에만 자신을 쏟으셨다. 종갓집 종부 자리와 육 남매의 맏며느리 노릇은 잠시도 엄마를 그냥 두지를 않았다. 줄줄이 시동생과 시누이 결혼시키고 형제간 우애 있게 지내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하셨다. 그 덕분에 지금도 우리 집안 사촌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서로를 위하고 화기애애하게 잘 지낸다. 이 모두가 엄마의 희생이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온통 일하는 모습뿐이다. 작은 체구에 커다란 흰 무명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언제나 종종걸음으로 다니셨다. 큰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모든 일을 싫은 내색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잘도 해내셨다. 솜씨 좋은 엄마는 쉴 틈이 없었다. 정갈하신 우리 할머니와 올곧은 성품의 할아버지 수발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신 효부였으며 늘 집안이 먼저였고 일이 우선이었다. 철없던 나는 일만 하는 엄마가 싫었다.

그래도 나는 종손녀라는 이유로 조부모님의 사랑과 아버지 안 계신 빈자리를 삼촌들 덕분에 그래도 올곧게 자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할머니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나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내가 연탄가스에 중독돼 의사의 진찰을 받을 때 "우리 손녀 죽으면 안 된다"며 통곡을 하실 정도로 나를 아끼셨다. 지금은 할머니와 똑 닮은 고모가 때로는 할머니, 때론 엄마 역할을 해주신다. 참 감사하다.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엄마가 편히 사실 때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늦게 발견되어 그날로 병원에 입원했고, 만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코에 호스를 꽂고 말 한마디 못하시고 고통스럽게 계시다 3년 전 한 많은 이승을 하직하셨다.

그런 엄마를 위해 건강하실 때도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게 없고 늘 아프다고 걱정만 끼친 내 모습이 한심할 뿐이다. 어린 딸을 두고 제대로 눈감지 못하신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평생 가슴에 묻고 고생만 하신 우리 엄마, 두 분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른다.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마시고 이승에서 못다 한 정 나누시면서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엄마 딸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할머니와 부모님, 삼촌, 숙모가 함께 모여 하늘나라에선 아프시지도 외롭지도 않게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아주 많이 그립고 많이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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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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