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이맘때 즈음이면 늘 생각나는 분이 계신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주셨던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는 우리 부모님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이면 유독 가족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삶이 너무나 바빠서 두 아이에게 엄마로서 살갑게 챙겨주질 못했다. 그래서 성장한 자식들을 보면서 항상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6.25 전쟁 중 혼란한 시절에 태어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 나이에도 아직 어린 손주들이 없으니 특별하게 챙겨야 할 아이들도 없다. 나에게도 과연 그러한 유년 시절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이 살아온 나였다.
지금 나의 모습은 빛바랜 사진첩처럼 세월 속에서 많이 탈색되어 있지만, 나에게도 꿈많은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까? 그날은 방학을 며칠 앞둔 12월의 추운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바로 엄마를 찾았는데 그날은 엄마가 자리에 누워계셨다.
"엄마 와카는 데 어디 아푸나?" 엄마의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아이다 괜찮다 금방 나을 끼다. 이따가 저녁 먹고 교회에 연습하러 가야제?" 옛날 우리들이 어릴때는 성탄절을 앞두고 불쌍한 이웃들과 근처 나병환자촌에 위문 공연하러 간다고 교회에서는 제일 큰 행사를 준비할 때였다. 그때 친구들과 함께 저녁마다 노래와 춤과 연극 연습을 하러 갔을 때였다.

그날은 엄마 걱정 때문에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날씨가 매섭게 추워서 친구들은 하나같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뛰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았다. 내 손을 조금이라도 차게 해서 엄마의 뜨거운 머리를 만져주고 싶어서다. 손을 더 차게 하려고 위로 올려 휙휙 돌리면서 뛰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다. "하나님예 우리 엄마 이마 만져줄라카모 내손 꽁꽁 얼게해주이소. 그래서 우리 엄마 아푸지 않게 낳게 해 주이소 "
그리고는 집으로 도착해서 불덩이 같은 엄마의 이마에 작은 내 손을 올려놓았다. "엄마야 시원하제 하나님한테 내 손 꽁꽁 얼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왔다 아이가?", "아이구 그카다가 손에 동산이라도 걸리면 우짤라카노 우리 막내가 만져주니까 인자 하나도 안아푸네"하시고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으로 넣어주셨던 다정스러운 우리 엄마. 엄마의 그 칭찬 한마디가 얼었던 나의 온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 겨울은 정말 추웠었다. 그렇지만 그날의 나는 전혀 추운 줄도 몰랐었다. 나에게 그런 용기가 어떻게 일어났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한 에너지는 바로 엄마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의 힘이었는 것 같다. 막내로 자라 부모님에게 사랑만 듬뿍 받고서 응석만 부렸던 나였다. 그런 부모님이셨는데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가 20대에 두 분 다 돌아가셨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되면 내 차가운 손으로 엄마의 아픈 머리를 만져드리고 싶다. 그러나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부모님이 더욱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는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 자식들에게 따뜻한 엄마의 사랑 한 번 제대로 주지도 못하고 살았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힘들었던 그 시절은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힘들거나 슬플 때도 내 곁에 있어 준 것은 바로 가족이었다. 전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고 또 함께 하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처럼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한 해를 보내면서 전하려 한다.
"항상 내 곁에 있어서 고맙고, 사랑한다~" 라고 말이다.
올해 성탄절 날에는 꼭 이렇게 전해야겠다.
사랑하는 부모님(박영식·이외조)께 막내딸(박희숙) 올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