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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박생광(1904-1985), ‘범과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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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채색, 250×410㎝, 이영미술관 소장
종이에 채색, 250×410㎝, 이영미술관 소장

원래는 6폭을 한 화면으로 활용한 연속 병풍 형식이었으나 지금은 펼쳐져 유리 액자로 다시 표구되어 있다. 병풍(屛風)은 원래 바람을 막아주는 일종의 가구였다. 그러다 점차 그것이 놓인 공간과 그 앞에 앉은 사람을 빛내 주는 위세품이 되어 이 작품이 그려진 1980년대에도 대작은 병풍화가 많았다. 뜻으로 보면 '범과 모란'은 부귀와 장수를 약속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며 가족의 화목을 기원하고 액운까지 막아주는 만능 병풍이다. 박생광은 상서로운 뜻을 가진 전통적인 여러 모티브를 멋지게 활용해 새로운 창작물로 완성했다.

가운데의 모란과 괴석은 궁궐 병풍인 '궁모란도'에서 왔고, 화면 위쪽의 구름 문양 사이로 보이는 주홍빛 해와 파랑색 달은 일월을 한 병풍에 그려 어좌를 장식하는 왕 전용의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또는 '십장생도'에서 왔다. 고개를 돌려 나뭇가지 위의 두 마리 새를 올려다보는 왼쪽 호랑이는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왔고, 오른쪽의 두 마리 새끼를 어르고 있는 암호랑이도 호랑이가족을 그린 민화에서 나왔다. 부귀화(富貴花)인 모란, 석수만년(石壽萬年)의 돌을 가운데 두고 벽사의 호랑이를 좌우로 그리면서 희소식을 전하는 까치도 넣었다. 박생광은 민화와 궁화에서 필요한 품목들을 가져와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고 나쁜 것을 막는 조형적 부적으로 화려하게 융합했다.

황색, 청색, 남색, 홍색, 녹색, 백색, 흑색 등의 색상과 굵은 주황색 윤곽선, 눈부신 화이트에서 박생광의 오색찬란한 색채가 잘 드러난다. 원색 본연의 생생한 활기와 강렬함이 압도적이다. '범과 모란'을 보면 조선시대뿐 아니라 20세기 미술에서도 색채가 억눌렸고, 색채를 무시하려하고 두려워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랫동안 물질적인 것 대신 정신적인 것을, 화려함 대신 검소함을, 채색화 대신 수묵화를 숭상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해 온 어떤 공통된 무의식 때문일 것 같다.

박생광과 1904년생 동갑 화가인 이응노는 외국으로 나가 고국을 바라보고 고국동포를 떠올리며 수묵화 '군상'(1986년)을 그렸고, 분단 후 북쪽으로 간 김용준은 우리 미술의 '광채 나는 전통'을 연구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년)로 펴냈다. 박생광은 민간미술의 전통 속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채색화를 가지고 나와 자신의 양식을 완성했다. 박생광은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전(林巨正傳)을 쓰면서'에서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삼천리' 1933년 9월호) 한 그런 예술정신의 실현을 회화로 보여주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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