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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송영길 대표의 사과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사과(謝過)는 일정한 형식과 내용을 갖춰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잘못을 구체적으로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하며,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과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과에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 조건을 단다면,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가령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면서 "우리가 잘못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너희도 잘못이 크다. 그건 너희도 인정해라"고 한다면 사과라고 할 수 없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해 지난 2일 사과했다. 송 대표는 1심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입시 비리 혐의에 대해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이 펴낸 회고록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이 검찰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한 데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가족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대표의 말은 사과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과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사과를 하면서도 '우리 잘못이 명백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상대편이 하도 아프다, 화가 난다고 하니, 그런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고 한 셈이다. 게다가 불필요하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겨눴으니 '사과'가 아니라 다음 전투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지 20년이 넘은 사람이다. 국회의원 혹은 인천시장으로서 그가 했던 발언들을 보면 송 대표가 균형 있고, 합리적인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특정 정파 혹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그림을 갖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런 송 대표마저도 제대로 된 사과를 못 한다. 멀쩡한 사람조차 두 발을 짚고 똑바로 서지 못할 만큼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반이 경도됐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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