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김현희 작 '닮다르다'

90x57cm Mixed media (2020년)

김현희 작 '닮다르다' 90x57cm Mixed media (2020년)

20세기에 들면서, 또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서양사회를 지탱해온 2개의 축인 '기독교적 세계관'과 '이성적 시민사회'는 그 뿌리가 흔들려 기존 세상에 대한 회한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소용돌이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예술, 특히 미술은 과거의 엄격했던 화법(畫法)이나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미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과 인간 무의식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현대적 추상화의 단초를 마련한 바실리 칸딘스키는 "이제껏 그림은 점과 선과 면, 색의 향연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어떻게 그렸나에 집중해왔다"면서 "그림은 굳이 대상을 그리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등장한 '다다이즘'은 과거 찬양받던 예술의 의미나 형식을 모두 부정했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표현주의'는 미술에서의 감정과잉을 경계했고,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 이성세계를 부정, 무의식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20세기 중반에 들면 바닥에 종이를 깔고 붓, 막대기, 팔레트 나이프 등으로 물감을 찍어 뿌리거나 들이부어 흘러내리게 하는 드리핑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잭슨 폴락이 등장, 구체적 형상이 없는 '추상화'이면서도 화가의 정서나 에너지 폭발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표현주의적 화풍을 구사한 '추상표현주의'를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김현희 작 '닮다르다'는 어떠한가?

그녀의 그림을 보면 붉은 색 중심의 화면에 색감의 도드라짐을 위해 짙은 갈색의 선으로 뭔가 모를 형태를 그려놓았고, 화면 위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녹색의 선이 그려져 있다. 붉은 색은 면과 색의 표현이며, 짙은 갈색과 녹색은 '선'의 드러냄이다. 선 또한 딱히 무언가 염두에 둔 붓질이 아닌 그냥 무의식적 흐름의 결과처럼 보인다. 다만 첫눈에 알 수 있는 건 적(赤)과 녹(綠)의 콘트라스트가 무엇보다 선명하다는 점이다. 두 색은 보색관계이니 당연한 느낌이다.

"유레카!"

그림 제목인 '닮다르다'의 의미는 '닮은 듯 다르다'이다. 이는 곧 유사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현희는 이 그림을 통해 '닮음'과 '다름'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인 조형언어인 구상성이 해체되면 남는 것은 색과 선뿐이다. 그 선마저도 형태의 경계성을 묘사하기보다 풀려지고 흩뜨려져 있어 애매하기 그지없고 혼란스럽다. 그런데 그 애매성과 혼란이 오히려 배회하는 인간의식을 바로 잡아주는 치유의 비상구가 됨을 우리는 잊고 산다. 흔들리는 자아, 의식과 무의식의 위태로운 경계, 사물에 대한 온갖 의심 등등 이 모든 정신적 불안감의 원천이 '나 외에는 모두가 다르다'는 숙명적 명제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때, 차라리 이 다른 것들을 유연하게 의식의 틀 안에 받아들이면 어떨까?

김현희는 캔버스 작업을 통해 원초적 불안을 치유하면서 더 나은 자유로의 비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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