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전거 타는 법

이나리 소설가
이나리 소설가

나는 아빠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풍기며 몇 바퀴씩 돌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빠는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며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놓는, 세상 모든 아빠들이 가진 기술을 시전했다. "아빠가 잡고 있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학교 다닐 때, 같은 과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버지한테 자전거를 배워?"

언니의 그 대답에 나도 깜짝 놀랐다.

"그럼 누구한테 배워요?"

그 언니는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았다.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우리 사이에는 큰 벽이 있었다. 언니는 꼬박꼬박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우는 일은 너무 어렵고 불편해서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자전거 타는 방법 같이 사소한 건 혼자서 스스로 깨우쳤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언니와 달랐다. 나는 아직도 '아빠'라고 부르고,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일상을 조잘거린다. 자전거 타는 방법 같은 무시무시한 일은 당연히 아빠에게 배워야 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 경기도 파주를 가야 했다. 아빠는 대구에서 파주까지 먼 길을 떠나는 딸이 혹여 길이라도 잃을까봐 직접 운전해서 데려가려 했다.(겨우 말렸다) 걱정이 그치지 않았던 아빠는 그날 하루종일 내가 길은 잃지 않았는지, 제대로 오가고 있는지 수시로 전화해서 상황을 확인했다. 내 나이가 서른 하고도 한참 더 헤아려야 할 만큼 먹었는데도, 아빠는 내가 길을 잃고 헤맬까봐 걱정했다. 나는 그 걱정이 너무 좋았다. 아빠가 더 오랫동안 나를 걱정해주었으면 좋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못 탄다. 어릴 때 그렇게 흙먼지 속을 굴렀는데도 결국 실패했다. 아빠는 며칠간 그렇게 고생하고도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운동신경이 없는 탓이 크다고, 유전자를 탓했다. 아빠는 "때 되면 다 배운다"고 말했다.(아직도 못 타는 걸 보니 때가 아직 안 왔나보다)

내가 먹은 나이하고는 별개로 나는 항상 부족하고 부실한 인간이다.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낸다. 그런 생의 한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아빠만큼은 예외다. 아빠에게 나는 여전히 길 잃고 헤맬 어린 딸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놓고 아빠에게 어리광을 피운다.

"아빠가 잡고 있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불안하고 못 미더울 때, 뒤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그러면 어쩐지 넘어져도 괜찮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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