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용덕(경제학박사) 씨 할머니 故 이쾌상 씨

손자가 온다고 하면 몇 시간 전부터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셨죠
항상 '우리 강생이' 최고라고 칭찬하며 사랑으로 반겨주셨지요

할머니 故 이쾌상 씨가 밀양시에 위치한 집에서 손자 김용덕 씨, 손녀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가족제공.
할머니 故 이쾌상 씨가 밀양시에 위치한 집에서 손자 김용덕 씨, 손녀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가족제공.

힘들고 고된 날이면 지금도 할머니가 생각난다. 항상 나를 최고라고 생각하고 사랑으로 반겨줬던 할머니가 보고싶기 때문이다. 손자가 마당에서 뛰어놀던 모습을 보며 미소 지으셨던 할머니... 나밖에 몰랐던 할머니... 연세가 많이 드신 후에 무릎이 좋지 않음에도 내가 할머니 집 도착하기 몇 시간 전부터 마을 어귀 큰 돌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셨다가 내가 보이면 달려오셨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고 시골집에 간 날은 깜짝 놀라시며 버선발로 신발도 신지 않으시고 마루에서 달려와서 손을 잡아주셨다. 우리 강생이라면서...

비 오는 날에는 할머니 집 앞마당에 두꺼비가 종종 나타났는데 어릴 때는 그 두꺼비가 잡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부탁하면 매미며 개구리며 잡아주셨는데 항상 두꺼비는 독 있어서 안 된다고 위험하다고 잡아 주시질 않았다. 그리고 영험한 생물이라 하셨다. 그래서 매번 비 올 때 두껍~두껍 거리는 두꺼비를 구경만 했었다. 그러고 있는 나를 볼 때면 할머니는 못 잡아주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면 근처 시골 슈퍼에 있는 과자 등을 사주시곤 했다.

할머니 집은 아궁이가 있어서 거기에 밥을 하고 생선을 굽고 했는데 불 지피는 것이 큰 재밋거리 중 하나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갈 때 맞추어서 신문지와 불 지필 거리(작은 나무들)를 항상 준비해놓으셨다. 아궁이 주변을 재로 엉망을 만들어도 다른 불 지필 거리를 찾아주려 하셨다. 내가 뭘 하든 항상 웃으면서 좋아하셨다.

뒷마당 언덕 위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경사가 심해서 그냥 올라가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누나와 함께 대나무에 고리를 걸어서 올라가기 위해서 요리조리 노력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다칠까 봐 엄청 걱정하셨는데 다음에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대나무에 끈이 묶여있어서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것 같았다.

할머니 故 이쾌상 씨가 밀양시에 위치한 집에서 손자 김용덕 씨, 손녀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가족제공.
할머니 故 이쾌상 씨가 밀양시에 위치한 집에서 손자 김용덕 씨, 손녀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가족제공.

할머니 집에는 도둑고양이가 종종 나타났는데 잘 도망가지도 않아서 내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할머니께 키우고 싶다고 하니 고양이는 알아서 왔다 가니 못 키운다고 하셔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 삽살개 새끼를 구해오셔서 나에게 안겨주셨다.

다시 보고 싶지만, 항상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매년 그 자리에 있을 듯했던 할머니도 할머니 집도.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어느 해는 삽살개가 나이가 들어 사라져 버렸고, 어느 해는 뒷마당 나이 든 감나무에 감이 안 열리게 되었으며, 창호지 방문이 일반 방문으로 바뀌어 버리고 아궁이는 흙으로 메워서 더 쓰지 못하게 되었다.

할머니 향기가 묻어있는 집안 곳곳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질때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어느새 바뀌어 버린 모든 것들. 항상 우리는 그 사랑에 대해 뒤늦게 깨닫게 된다.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할머니는 아마 깜짝 놀라며, 나의 양 볼을 쓰다듬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고, 우리 강생이 이렇게 컸나~

우리가 온다고 하면 마을 어귀에서 새벽부터 기다리던 할머니. 매일매일 그렇게 우리만 생각하던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최고라고 말해주던 할머니. 힘든 날이면 더욱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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