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무의촌진료 봉사활동의 추억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치과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무의촌진료봉사활동을 1순위로 꼽을 것이다. 매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에 무의촌진료봉사활동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4~5일 동안 농촌지역에 머물면서 봉사활동을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대개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서 진료실과 숙소를 마련하고 식사는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그 당시에는 농촌의 어느 지역을 가든지 대학생들의 무의촌진료 봉사활동이 큰 환영을 받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실을 빌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면사무소 같은 행정기관의 도움도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진료가 시작되는 날에는 아침부터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면사무소에서 이미 각 동네의 이장을 통해서 진료 봉사활동에 관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홍보했기 때문에 봉사활동이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환자도 있었고, 일찍 치료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십여리 길을 걸어 온 환자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면 단위에는 거의 치과가 없었고 군청 소재지에 한두 군데의 치과가 있었을 정도로 치과가 귀해서 농촌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치과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치아가 거의 다 망가진 아주머니를 대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초등학생 어린이의 영구치가 벌써 많이 상해서 발치해야 할 때는 마음이 아팠다.

저녁 시간에는 학교 운동장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대학 시절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청도의 어느 지역에 갔을 때는 마을 이장님께서 지도교수님을 위한 숙소를 따로 마련해 주셨는데, 방에 가보니 미리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까지 피워 놓아 정말 감사했다. 면장님이나 지서장님께서 격려차 봉사활동 현장을 방문하면 곧잘 삶은 옥수수나 수박, 과일 등을 선물로 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무의촌봉사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도 봉사활동의 보람과 즐거움이 큰 소득이었지만, 봉사활동을 준비하면서 예산을 짜고, 현지답사를 하고, 초등학교와 행정기관을 방문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 일들이 나에게는 좋은 사회 경험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급생과 선후배가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서 끈끈한 정을 나누고 동료의식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과외의 소득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통해서 환자진료라는 임상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과거의 무의촌진료봉사활동은 자취를 감추고 있는 중이었다. 봉사활동이 위축된 가장 큰 원인은 농촌 인구의 급감으로 봉사활동 대상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이젠 농촌에 진료봉사활동을 나가도 연세 많으신 노인들만 가끔 찾아 올 뿐이고 아동의 방문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봉사활동 위축의 두 번째 원인은 농촌의 공공의료시설 확충과 공중보건의 배치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면 단위 보건지소에 치과진료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주민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대학생들의 무의촌진료봉사활동이 과거처럼 큰 환영을 받는 분위기가 아닐뿐더러 초등학교 교실을 빌리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고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학생들의 모든 자치활동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진료봉사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급격히 변하는 세상 속에서 '추억 만들기'는커녕 미래의 희망조차 담보할 수 없는 요즘 대학생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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