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만년 이어온 조상들의 삶의 자취가 먼 훗날 후손들의 지혜의 샘이 되길 빌어봅니다."
지난달 30일 경북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다양한 형태의 목조각들이 줄지어 있었다. 경북무형문화재 제45호 목조각장 조병현(67) 씨가 28일부터 전승회를 열고 한창 구슬땀을 흘리며 시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날 이곳에는 그와 제자 5명이 준비한 십육 나한(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 얼굴 조각 등 조각품이 선보였다. 나한은 예로부터 종교적 색채보다 인간의 소원을 성취해준다고 여겨온 데다, 일정한 틀보다는 조각사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는 흘러간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전통을 잘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52년간 조각칼을 쥐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힘들었던 삶을 이겨내기 위해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대신 기술학교에 들어가 조각칼을 잡았다. 경기 양평군 산골에 살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가지고 놀이를 하거나 공구를 만들어 집에서 사용했던 터라 어렵거나 두렵진 않았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깍고 패면서 목조각의 기초를 체득한 것이다. 운이 좋게도 그는 인근 '양평 공예사'에 들어가면서 첫 스승 김성수 선생을 만나 목조각 기능을 익히기 시작했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웠다. 1970년 상업 조각이 대성황을 이루면서, 그는 선배기능인들에게 인물, 동물 조각 등 민속적인 조각 기법도 전수 받았다.
조 씨는 1979년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해 상업 조각 일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평소 관심을 두고 있었던 불교 조각상 제작을 본격 시작하게 됐다. 불교 조각상은 불교 경전 내용을 조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는 절에서 생활하며 목조각상을 만드는 등 여러 절을 다니며 작품활동을 했다. 1982년 경북 상주 중궁암에서 500상의 나한을 조성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부산 범어사, 관음사, 고성 건봉사 등 조각상이 필요한 곳 어디든 달려가 작업을 했다.
그는 1982년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 참가해 장려상을 받는 등 총 3번의 상을 받았다. 특히 1988년에는 금상을 수상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 씨는 수많은 작업을 하면서 실력을 키워갔다. 특히 수많은 목조각 예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는 영감을 얻기 위해 칼을 내려놓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선조들이 조각한 작품을 보며 지혜를 엿보고 이어가기 위해서다. 201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전수교육조교 자격도 얻었다. 2015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불모들의 향연'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수십 차례의 행사에 작품을 선보여 왔다.
조 씨는 아름다움 뒤에는 말 못할 고통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칼이 워낙 날카롭다 보니 베이고 찢어지는 것도 일상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손에 상처가 생겨 한번은 힘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조각상을 만들어 온 그에게 이제 상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훈장이다. 굳은살이 생기고 상처가 가득한 그의 손은 투박하지만, 조각품만큼은 옷깃의 구김까지 표현할 정도로 누구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한다.
그는 제자들을 꾸준히 키우며 조각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전승회와 시연회 등을 통해 조각이 일반 시민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조 씨는 "종교적으로만 생각하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종교를 떠나 조각을 통해 진정한 조각의 가치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것이 없다"며 "앞으로도 전통 계승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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