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처음엔 채도가 낮은 색의 면을 한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 색면회화와 첫 대면은 '색'을 칠했다기보다 '빛깔'을 구현해 놓은 듯했다. 인위적인 색이 아니라 자연의 빛깔이 캔버스에 잔뜩 뿌려져 있었다.
리안갤러리 대구가 펼쳐놓은 김택상 개인전 '담'(淡)전의 첫 인상은 이러했다.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빛이 색의 형태로 흘러나와 보는 이에게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색채 자체가 미묘하게 변주되는 그런 촉각의 변화랄까.
김택상은 캔버스 천을 모노 톤의 아크릴 안료를 푼 물 속에 2, 3일 두면 안료 속 접착제가 물에 녹으면서 안료의 입자만 캔버스 천에 착상되고, 이렇게 착상된 캔버스를 물에서 꺼내 말린 후, 다시 아크릴 안료를 푼 물에 담그고 꺼내서 말리는 과정을 20~30회 되풀이하는 작업을 했다.
이 공정을 통해 화면의 채도는 떨어져도 중첩된 작업으로 인해 미세한 층위가 생기고 그 층위의 공간감은 밋밋한 색면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고 색 자체는 스스로 발광하는 듯한 후광을 뿜어낸다. 일종의 '물광 효과'인 셈이다. 따라서 작가에게 물은 단순히 농담과 채도를 조정하는 단순한 수단을 넘어 안료와 동등한 예술적 미디움으로 간주된다.
김택상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의 색에 매료되어 색으로 자신만의 감각 세계를 구축하고 그 감각에 새겨진 이미지를 물질적, 시각적으로 펼쳐놓았다. 작가의 작품들은 물로 통제된 색조의 농담은 반복공정으로 인해 반투명한 층위들의 경계가 생기면서 발색의 효과는 더욱 풍부해진다.
어찌 보면 김택상은 색면회화 측면에서 모노크롬 회화의 특징을 잇는 것 같지만 미술 사조와 맥락을 따져보면 전혀 모노크롬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서구의 모노크롬은 기하학적 원근법에 의한 환영적 시각에 입각한 회화 행위를 중단하고 미술사를 원점에서 다시 출발시키려는 열망에서 시작됐지만, 김택상은 회화에서 환영을 없앨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는 물리적 사실과 심리적 효과 사이 존재하는 불일치에 반응해 그 간극 속에서 작업을 했을 뿐이다.
이번 리안갤러리 대구 전시에는 김택상의 작품 25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12월 30일(목)까지. 문의 053)42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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