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서릿길을 셔벗셔벗

신미나 지음/ 창비 펴냄

강원 평창군 대관령길에서 관광객들이 설경과 함께 겨울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강원 평창군 대관령길에서 관광객들이 설경과 함께 겨울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신미나 지음/ 창비 펴냄
신미나 지음/ 창비 펴냄

'이 계절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 내 마음의 첫 문장이 될 때,' 띠지의 문구부터 시다. 웹툰도 잘 그리는 신미나 시인이 그림일기 같은 시집을 냈다. 시집 같은 그림일기라 불러도 좋다. 아무렴, 감성을 자극하는 데 어찌 불려도 모자람은 없다.

'싱고, 한뼘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신미나 시인은 시를 쓸 때는 본명을, 그림을 그릴 때는 '싱고'라는 부캐(부수 캐릭터) 같은 필명을 쓴다. 그런데 부캐라 부르기에 멋쩍은 것이 그는 시와 웹툰의 융합으로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러니까 '툰시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낸 장르는 '시툰'이라고도 불리는 중이다.

역시나 이 책의 마력은 그림과 조화를 이루는 시에서 나온다. 동글동글한 그림들이 없었다면 자칫 메모에 그쳤을지 모를 문장들도 보인다. 그러나 짧은 시가 그림에 엎어지면서 '시'라는 철옹성의 진입 장벽을 없앤다. 선입견을 찢어놓는 파괴력이다. 장벽이 무너진 뒤 여운을 음미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마음먹으면 한 시간 안에 독파할 수 있을 만큼 짧다. 간략한 메모에 가깝지만 잔향이 사뭇 진하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아빠미소'의 눈빛과 닮았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듯 묘파해내는 능력은 이미 그의 등단작 '부레옥잠'에서 입증한 바 있다.

입동부터 상강까지 이십사절기와 사이사이에 계절적 풍미를 배가시키는 소재들이 시제로 들어가 있다. 사소한 일상이 분명한데 특별한 순간들로 각인된 기록들이다. 자신의 반려묘, 늙은 고양이 '이응'과 겪어낸, 이겨낸, 살아낸, 깨쳐간 사계절이다.

제목은 '상강(霜降)'의 시구에서 왔다. "이른 아침/ 입김을 날리며 걷는다// 셔벗 아이스크림처럼/ 부서지는/ 발아래 살얼음// 서릿길을/ 셔벗셔벗" 살얼음이 낀 듯한 길을 밟을 때 셔벗 아이스크림의 살얼음을 떠올린다. 씹히는 소리와 밟히는 소리가 닮았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자연을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일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같다고 본다. 이런 보살핌은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없다는 인식과 연결되며 어쩌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자연과 관계 회복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심정으로 썼다"고 적었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부레옥잠'이 당선돼 문단에 이름을 알린 시인은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등을 냈고,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를 쓰고 그렸다. 22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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