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읽지 않았거나, 대충 줄거리만 알고 있는 책이 더러 있다. 이 책이 내게 그런 책이었다. 줄거리는 어디서 들었든지 아니면 이 책을 언제 슬쩍 읽었든지, 알고 있었지만 온전히 읽은 책은 분명 아니었다. 이제 제대로 읽고 감동을 받는다. 고전인 이유가 무엇인가 짐작되기도 한다.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영국 사회.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노동자와 사용자간 갈등이 팽배하였다. 작가는 12세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빈곤과 노동 착취를 체험하였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유령을 만나 과거, 현재, 미래를 스케치하며, 구두쇠 '스크루지'가 된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동업자 말리의 유령을 만나게 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삶을 보게 된다. 과거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과거를 보고, 현재의 유령을 만나 고리사채업자인 욕심 많은 자신으로 인해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미래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환상을 보게 된다.
과거의 유령을 따라 스크루지는 과거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외톨이 소년이었던 자신, 그 소년을 다독이던 어린 소녀의 모습, 돈과 사랑에 빠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난 여인의 모습. 그때 그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감정을 느끼며 절규한다.
"내가 스스로 만든 족쇄지. 내가 한 고리, 한 고리 만들어서 1m씩 늘여나갔지. 나는 자유 의지로 쇠사슬을 찬 거라네. 내 자유 의지로, 이 모양이 낯설어 보이나."(89쪽) 스크루지는 죽어서도 쇠사슬을 흔들면서 고통 받는 동업자 말리의 모습을 보았다.
현재의 유령을 만나 주변 사람들의 삶을 스케치한다. 벽을 만들어 사는 모습, 사악하게 바뀐 자신의 얼굴을 지켜본다. 조카와 가족들이 모여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베풀 줄 모르고 말로 상처만 주는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본다.
미래의 유령을 따라간 곳은, 상상하기도 싫은 곳, 차디찬 방에 담요도 없이 홀로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불쌍하게 죽어갔지만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크루지는 유령에게 자신의 미래를 바꿔달라고 애원도 했고,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참회한다.
이 책이 크리스마스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며 살아왔는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그렇게 물어보라고 한다. 베풀며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꼭 경제력이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일이 더 귀한 것이 아닐까.
크리스마스에는 각자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앉았을지도 모를 스크루지 같은 생각들을 벗어던지자. 그리고 겨울이 몹시 추운 사람들에게, 아니면 외로운 벗에게 고운 마음을 주든지, 아니면 이 책 한 권 선물하면 좋겠다. 춥지 말라고, 외롭지 말라고, 그리고 새해 행복하라고…. 메리 크리스마스.
이풍경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