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문화예술도시를 완성하는 관객의 힘

1927년 대구제일소학교 소프라노 추애경 독창회 '만석'
1957년 대구교향악단 창단연주회도 객석 학생들로 '빼곡'
'관객 경험' 적었던 시민들…좋아진 환경만큼 관객 수준도 성장해

1927년 6월 3일 소프라노 추애경의 독창회
1927년 6월 3일 소프라노 추애경의 독창회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품이라 하더라도 관객이 없으면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근대기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는 서양식 공연장이 도입된 이후,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오늘은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부분, 바로 관객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 공연 기록은 주로 신문 기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데 관객들이 찍힌 사진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먼저 1927년 6월 3일 대구제일소학교 강당에서 열린 영남최초의 소프라노 추애경의 독창회 사진이다. 또 작곡가 현제명이 1929년 9월 7일 대구제일소학교 강당에서 제1회 독창회를 열었다는 기사가 있다.

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두 공연 사진은 흐릿한 흑백이지만, 꽉 찬 객석을 확인할 수 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니, 작은 강연회를 열어도 인파가 몰려들던 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야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추애경의 공연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이는데, 당시 신명여학교에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공연장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1957년 12월7일 이기홍 지휘자가 이끄는 대구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의 창단연주회
1957년 12월7일 이기홍 지휘자가 이끄는 대구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의 창단연주회

그리고 6‧25전쟁이 끝난 뒤, 1957년 12월 17일 대구문화극장에서 이기홍 지휘자가 이끄는 대구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의 창단연주회 기록이다. 팸플릿과 함께 공연 사진이 두 장 남아있다. 그 중 한 장이 무대에서 객석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다. 지휘자 등 뒤로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얼굴이 빼곡하게 보인다. 뒷줄에는 교복 모자를 눌러쓴 남학생들도 눈에 띈다.

음악인들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음악으로 일구어 보겠다고 나섰지만,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선뜻 클래식 공연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터. 교향악 공연의 관객은 주로 학생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이기홍 지휘자가 능인중학교에, 협연으로 출연한 바리톤 이점희 선생이 경북여고에, 작곡가 김진균 선생이 대건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었으니, 학생들 교육 차 공연 관람을 독려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기홍 지휘자는 생전에 "일반인들에게 서양음악이 낯선 시기에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니, 관객 개발이 큰 숙제였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동원된' 관객들이 '자발적' 관객이 될 수 있도록 경험이 쌓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동원'이 필수적이라고도 덧붙였다. 요즘은 예술교육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나, 그때는 '동원'이 바로 '교육'이었다. 현장 경험이 부족한 관객들이 많았기에 공연 관람 예절 안내도 현장에서 바로 해야 했다.

'관객 개발'이라는 과제는 1990년대 초반까지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던 것 같다. 필자의 첫 연주회 감상도 학교 음악 숙제였으니 말이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연주자들이 노래를 했던 기억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오페라 아리아의 밤'이었던 것 같다. 공연 중 친구들과 킥킥거리기도 했고 언제 박수를 쳐야할지 몰라서, 주변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를 맞췄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문화예술 잡지를 만들면서 만난 공연장의 풍경도 그와 별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일반 관객들 비중이 과거보다는 높아졌지만, '관객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서도 지휘자가 한 호흡만 멈춰도 바로 박수를 쳐서, 지휘자가 돌아서서 조용히 시키는 해프닝도 종종 있었다. 배우들이 눈앞에서 공연하는 소극장에서조차도 영화관에서처럼 음식물을 들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으니, '관람 예절' 안내가 공연장마다 큰 숙제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1년, 대구의 공연장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시간 늦게 도착해서 입장을 요구하는 관객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관객들은 단 한명도 없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공연도 많아졌다. 관객 참여형 공연을 대하는 태도도 스스럼없다. 배우들과 함께 직접 공연을 완성해 나가야하는 미션도 거침없이 해낸다. 전문 공연장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기획 공연이 연중 펼쳐지고, 소규모 공연장에서도 좋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서 관객들도 함께 성장한 것이다.

대구를 찾은 유명 연주자들 가운데 대구 관객들이 보내 준 환호의 힘으로, 전국 투어를 이어갈 에너지를 얻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향후 일정을 정하는 프로모션 공연을 시작하는 도시로 대구를 선택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멈췄던 공연장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을 때, 반갑게 찾아준 관객들이 있어 예술가들이 힘을 낼 수 있었다. 문화예술 도시 대구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은 바로 관객의 힘이었다.

임언미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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