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9·11 테러에서 생존한 사람 900명가량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계단으로 달려가기까지 평균 6분을 미적거렸고 어떤 사람은 계단 앞까지 가는 데 45분이나 소비했다고 한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생존자의 40%가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갖가지 물건을 챙겼다고 답했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왜 꾸물거리는 걸까.
'언싱커블'(The unthinkable)을 쓴 타임지 기자인 아만다 리플리는 이와 같은 양상을 재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생존하기까지 거치는 3단계 행동양식 중 첫 번째 거부 단계, 즉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단계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 불이 나거나 건물이 무너지면 바로 계단으로 달려가야 하지만, 많은 사람이 꾸물대면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얘기다.
거부 단계를 지나면 숙고 단계, 즉 살길을 생각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어? 어쩌지…' 하면서 살길을 생각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공포에 지배된다. 공포는 우리를 혼란에 빠뜨려 구명재킷을 입는 방법이나 안전벨트를 푸는 아주 단순한 방법도 잊어버리게 한다.
앞의 두 단계를 넘어서면 마지막으로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정신적 공황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가오는 위험을 뻔히 보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일시적인 마비 상태가 오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공황과 마비는 판단 착오의 문제라며 최대한 빨리 합리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생존한다고 말한다. 불이 번지기 전에 건물에서 나가야 하고 배가 침몰하기 전에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재난에 직면했을 때 거부와 숙고를 신속하게 지나 합리적인 행동을 최대한 빨리 실행할수록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재난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습득, 훈련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훈련의 중요성은 '모건스탠리의 기적'에서 잘 알 수 있다.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붕괴되었을 때 모건스탠리 직원 2천700명 중에서 보안책임자 레스콜라를 포함하여 단 13명만이 그 안에 있었고, 나머지 모두가 무사했던 것은 레스콜라가 8년 넘게 해 온 연 4회의 대피 훈련 덕이었다. 직원들이 자연스레 대피 통로와 대피 요령을 숙지했기에 불과 10여 분 차이로 붕괴된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반복적인 실제 훈련은 공포 반응과 타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 실천이 문제다. 소방서가 실시하는 안전교육이나 소방훈련, 아파트 단지나 직장에서 실시하는 대피 훈련 등에 적극 참여하자. 초고층 빌딩에 근무하고 있다면 적어도 대피 통로와 대피 요령을 숙지할 수 있을 만큼 몇 개 층만이라도 실제 대피 훈련을 하자. 꼭 실제 훈련이 아니더라도 미국처럼 가정과 직장에서 대피도를 그려보고 화재 시 모일 수 있는 대피 장소를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피해야 할 때 자신이 꾸물거리거나 기내 화물칸에서 가방을 꺼내느라 시간을 허비할 것 같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이 그런 좋지 않은 습성을 고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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