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은 기자회견이 있었다. 때마침 발생한 미국 조지아주 LG엔솔과 현대차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의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 사건으로 인해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이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어 사실상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첫째, 짓는데 15년이나 걸리는 원전은 AI시대 급격히 증가하는 전기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둘째, 원전 지을 곳도 지으려다 중단한 곳 한 곳 빼고는 없으니 사실상 원전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쓸데없는 원전 논란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1~2년 내 전력 공급이 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즉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게 사실인지 따져보자.
우리나라 원전 노형인 APR1400을 기준으로 통상적 건설기간은 준비기간에서 시작해 시운전을 마칠 때까지 138개월, 즉 11.5년이 걸린다. 그 중 환경영향평가와 주민설명회, 문화재 조사, 용지 매입 및 주민 보상 등 각종 인허가와 주민동의 획득에 필요한 준비 단계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63개월이 걸린다.
준비 단계를 제외하면 시운전까지 포함해도 실제 건설 기간은 75개월, 즉 6.25년 정도면 1.4GW급 원전 1기를 건설할 수 있다. 보통 2기가 쌍으로 건설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마음만 먹고 준비 단계를 서두르면 2.4GW 공급에 6년 반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두 번째 주장인 원전을 지을 장소가 과연 없는가. 문재인 정부 때 이전 정부에서 전력공급기본계획을 통해 취소된 지역만도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 등 두 곳이다. 또 다른 나라는 우리가 30년 사용하고 영구 폐로를 결정한 고리원전 1호기와 같은 노형의 원전을 60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일부 지역의 주민들이 우리 지역에 원전을 짓자고 청원하는 곳도 있다. 과연 지을 장소가 없는가.
솔직히 말해 '15년'이라는 기간은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고집하면서 각종 인허가를 고의로 지연시켜 발생한 특수 상황 때문이었다. 2014년 12월에 건설을 마치고 운영 허가를 신청한 신한울 1호기는 2021년 7월에야 허가를 받았고, 2호기는 2023년 9월에야 허가를 받았다.
신고리 3, 4호기의 APR1400 원자로는 운영허가 심사 이력이 이미 있는데, 동일한 원자로의 운영허가 심사를 6년 반 이상 끈 것은 고의적 지연이라 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 15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는 AI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문제는 신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AI분야의 막대한 전력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간헐성이 가장 큰 문제이고, 설비능력 100기가의 신재생 설비의 실제 공급능력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태양이 뜨겁게 하루 종일 내리쬐거나 늘 같은 방향으로 6.5m/sec 이상의 바람이 불어야 발전이 가능하다는 자연조건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훨씬 신재생 에너지 공급 환경이 뛰어난 미국이 원전 추가 건설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신재생 에너지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봤는가. 그들은 바보라서 짓는데 15년이나 걸리는 원전을 그토록 짓고 싶어할까. 그것도 자신들은 원전을 지을 능력이 없어 우리에게 지어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비용을 고려해도 신재생 에너지로 AI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한전 매입가격 기준으로 원전은 킬로와트시(Kwh) 당 60원이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모두 200원이 넘는다. 3배가 넘는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AI 기업과 데이터센터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과거 원전을 포기했던 나라들이 모두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대통령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 모두가 바보이고 지금 당장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되는가. 탈원전 문제를 갖고 더 이상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이 대통령에게 누가 어떤 정보를 제공했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원전 건설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안전한 원전을 지을 능력을 지닌 나라다.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 좋은 조건을 모두 포기하겠다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는 고백이 아니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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