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4>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일까?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주헌주

이기주 지음 / 말글터 펴냄
이기주 지음 / 말글터 펴냄

도서관에 근무한다고 하면 책을 많이 볼 수 있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이럴 때 내 대답은 "책을 가까이 하고만 있다"가 전부다.

나의 공공도서관 첫 발걸음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열린 독서교실 프로그램이었다. 어릴 때는 집에 책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책이 가득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서가 멋있어 보였고 부러웠다. 이후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하고 공공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2017년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올해의 한 책'으로 선정되었다. 당시 대구에서는 한 권의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며 책으로 하나되는 지역공동체 독서운동인 '한 도시 한 책 읽기'가 매우 중요한 독서사업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이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작가를 섭외해 대규모 강연회를 열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책은 1인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이라 작가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었다. 작가를 초청할 방법이 막막해 애간장을 태웠다.

그때 한 서점을 통해 "작가가 소규모 인원으로 소박하게 독자와 소통하길 원한다"는 정보와 함께 작가의 소셜미디어 주소를 알게 되었다. 즉시 서툰 솜씨로 휴대폰을 조작해 소셜미디어에 가입한 후 구구절절 간절한 문구로 강연회를 부탁하는 내용을 보냈다. 모시고 싶다는 내용을 보냈음에도 며칠째 감감무소식이었다.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무응답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눈에 익은 전화번호와 함께 전화벨이 울렸다. 이기주 작가였다. 반가운 마음에 "어머나, 작가님~"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그런데 승낙이 아니라 정중히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간곡하고도 애절한 심정을 담아 다시 부탁을 하고서야 가까스로 강연회 수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성사된 작가 초청 강연회는 전체 좌석 150명을 초과해 보조의자까지 갖고 와야 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2시간으로 예정됐던 행사도 시간을 훌쩍 넘겨 이기주 작가의 귀경 기차표를 취소해야 했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강연회 예정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작가는 청중 한 명, 한 명에게 끝까지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 촬영에 응해 주었다.

'언어의 온도'는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리고 언어가 지닌 다양한 의미를 담아낸 책이다. 작가는 말과 글에도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이 책은 내게도 언어의 온도를 변하게 했다. 누군가의 말이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상처가 되거나,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분명 언어에도 온도가 있을 것이다.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쯤 될까.

주헌주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주헌주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주헌주 2.28기념학생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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