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같은 해에 고흐와 고갱은 서로 자화상을 그려준다. 고갱의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와 고흐의 '빨간 베레모를 쓴 폴 고갱'이다.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고갱이 매끈하게 평면으로 그렸고, 고흐는 강한 터치로 거칠게 그렸다. 평면으로 그리기에는 고흐의 열정이 너무 강하다. 강한 열정을 절제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고흐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컵 하나를 그려도 그리는 사람의 영감(靈感)이나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한, 이미 그것은 재현하는 모방은 아니다. 저녁노을이 사진가의 영상에 담기는 순간 이미 창조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다 같아 보이는 삶도 다르다. 세상에 똑같은 인생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사진을 찍듯이 모방해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방이 가장 안전한 삶이라 착각한다. 남이 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앤디 워홀은 차이 나는 것들의 반복을 통해 똑같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고발한다. 그는 마릴린 먼로를 베끼듯 그렸지만, 하나하나 다 다르다. 똑같아 보이는 것은 단지 차이가 반복되면서 생기는 동일성에 지나지 않는다. 파이프를 아무리 모방해도, 그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의 이미지를 그리고도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텍스트를 단다.
우리 인생에 있어 모방해야 할 원본이 있을까. 아버지가 아들의 원본일 수 없듯이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그린다. 데칼코마니의 인생은 없다. 한 면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반대 면에 찍히는 순간 이미 원본과 모사(模寫)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마치 삶의 원본이 있듯 착각하고 모방하는 삶은 자유를 포기한 삶이다. 우리 모두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사람 만나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원본에 길들어 있는 건 아닐까. 원본을 모방하지 못하는 삶을 실패한 삶으로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내가 모방해야 할 원본은 실재하지 않는다.
원본은 허상이다. 워홀이 원본을 잘 모방해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은 아무리 봐도 그렇게 잘 그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림은 이렇게만 그려야 한다는 오래된 전통을 허문 창조적인 영감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마르셀 뒤샹이나 잭슨 폴록 역시 원본을 해체하는 데서 창조적 자유를 찾았다.
인생은 이미 주어진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구상화는 아니다. 구상화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나 BTS가 노래한 것은 그리스인 조르바가 갈구한 자유이다. BTS는 기존의 틀에 구속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를 찾아 떠나라고,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노래한다. LOV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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