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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10> 한 권의 도서는 백발 어르신의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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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사서 이성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지음 / 진한엠앤비 펴냄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지음 / 진한엠앤비 펴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아무도 손가락질하는 이 없던 2019년 겨울, 초등학생들의 겨울방학 시즌이라 시끌벅적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멋진 빵모자를 썼지만 옆으로 삐져나온 하얀 머리카락들이 나이를 짐작하게 하는 한 어르신이 어린이자료실을 찾아왔다.

잠깐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시고는 쭈뼛쭈뼛 난처해하시던 어르신께 다가가 여쭈었다. "어떤 책을 찾으시나요? 일반 도서를 찾으신다면 종합자료실에 있고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찾으신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내가 토종닭을 좀 키우려고 하는데 토종닭 병아리 부화에 관련된 책이 필요해요. 다른 도서관에 가봤는데 거기엔 없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어르신은 책이 없다면 책을 구입해서라도 볼 수 있게 좀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손쉬운 문제였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든지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백발의 어르신이 홍수처럼 정보가 널려있는 인터넷에서 토종닭 키우기에 관한 양질의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평소에 단순히 "이 책 어디에 있어요"라는 질문보다는 조금이나마 사서의 역할에 근접한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질문을 좋아한다. 가령 "'빨강머리 앤'은 어디에 있어요"라는 질문보다는, "50쪽 정도 되고 그림이 많은 '빨강머리 앤'을 좀 찾아주세요"라든지 "초등학생 5학년이 읽을 만한 '빨강머리 앤'을 찾아주세요"와 같은 질문이 조금이나마 나를 적극적이게 움직이게 한다.

그럼에도 "토종닭 키우기에 관한 책을 찾아달라"는 말에 선뜻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대구시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서도 그런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결국 구매라도 하실 수 있도록 서점 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러차례 검색 끝에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만든 '토종닭 종자개발과 핵심 번식기술'이라는, 학술적 제목과 표지를 가진 책을 찾아냈다. 나는 어르신께 제목과 저자, 출판사와 가격 등 정보를 작은 메모지에 담아 넘겨드렸다.

도서관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책을 추천해주지 못했다는 죄송스러움과 그나마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어르신은 내가 적어준 종이를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연신 감사해 하시며 도서관을 나가셨다.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영상 시청으로 많은 정보를 알아가는 시대에 백발의 어르신께는 한 권의 책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나에게 한 권의 책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시간의 단편인지, 혹은 백발의 어르신처럼 인생의 선생님인 적은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하루였다. 당신에게는 한 권의 책은 어떤 의미인가.

이성규 범어도서관 사서
이성규 범어도서관 사서

이성규 범어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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