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인 듯 온통 하얗다. 커다란 창에는 두 문장이 쓰였다. "퍽 어엿한 밤이다. 찬바람이 있으니 더욱 그렇지."(유희경,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중에서) 이 계절의 오롯한 문장이라며 써뒀다. 들어서기 전에 느낌이 온다. 시, 소설이 옹기종기 앉아있을 것 같은 느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하얀, 백설책방이다. 책방 안의 푸릇푸릇한 화분들이 따시다. 화분에서 자라는 나무 두 그루가 책방 한가운데 놓였다. 노랑아카시아와 둥근잎아카시아다. "식물의 무해한 느낌이 좋다"는 책방지기의 말 뒤로 소설 '지구 끝의 온실'과 '나인'이 보인다.
문학 중심 책방이다. 소설책이 한 가득, 에세이가 한 가득, 시집이 조금, 그림책이 조금이다. 음료나 차를 팔지 않기에 책 냄새가 전부다. 책의 활자들이 종이에 말라가며 내는 향(香)이다.
"소설을 좋아해요." 소설을 느리게 읽어온 이혜경 씨가 차린 책방이다. 인간의 마음과 관계를 볼 수 있고, 공감과 깨달음을 주는 문학의 매력을 알았다. 위로와 공감을 나누길 바라며 지난해 6월 상주초등학교 후문 가까이에 책방을 열었다.
5, 6년 전부터 책방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다.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더해지며 선택한 곳은 고향이었다.

"동네책방 마니아였어요. 카페보다 동네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겼죠. 여행을 가더라도 책방부터 먼저 가고 그랬어요. 맛집부터 검색하는 이들이 있는 거랑 같은 거죠. 그러다 보니 나도 한번 책방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좋은 문장을 필사하던 직장인이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과정이었다.
"소설을 그동안 안 읽었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다며 오신 손님이 가장 반가워요. 추천해드린 책이 좋았다는 답을 들을 때는 보람이 느껴지죠."
작가와 책을 알리는 게 보람이라는 그는 얼핏 소설교(小說敎) 전도자처럼 보였다. 고객들이 소설 내용을 파악하기 쉽도록 책마다 메모를 꽂아뒀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전체적인 내용을 가늠하게 해주는 문장을 필사해둔 것이었다.

그는 위로해주고 싶은 친구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고 했다. 조언과 같은 직접적인 메시지는 아니지만 에둘러 위로를 건네는 방법이다. 그런 성정을 아는지 정기구독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매달 책방지기가 고른 책 한 권씩 보내준다. 고객의 취향을 알아서 보낸다.
취향은 드러나게 돼 있다. "최근에 읽고 좋으셨던 책이 있으세요"라고 고객에게 반드시 묻는다. 영화 세븐에서 그러지 않던가. '캔터베리이야기', '신곡' 등 최근에 읽은 책 목록으로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색출해내던 FBI 요원처럼 말이다. 동네책방의 특장점이다.
"서점 운영이 마지막 직업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현재의 꿈은 자유로운 서점 할머니인데 가능하도록 방법을 찾아봐야죠."
월요일은 쉰다. 정오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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