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별세한 이어령 전(前) 문화부장관의 유고시집이 출간됐다. 2008년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책은 총 4부와 부록으로 구성됐다. 1부 '까마귀의 노래'는 그가 신에게로 나아가 얻은 영적 깨달음과 참회를, 2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은 모든 어머니에게 보내는 감사와 응원을, 3부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와 희망을, 4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그가 딸을 잃은 후 겪은 고통의 시간을 써내려간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중략) 움직이는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생물 중).
시대의 지성이자 큰 스승이었던 그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시선을 그대로 시에 옮겨놓았다. 외로움과 불안으로 감정이 메마른 현대사회에 마치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가슴 속에 잔잔한 따뜻함이 퍼져나간다.
다만 4부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힘든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보다 먼저 하늘로 돌아간 딸 이민아 목사를 향한 그리움과 고통이 시마다 절절이 배어나온다.
그는 딸과 함께 봤던 옛날 영화를 보며 손뼉을 치다가 울고, 세수를 하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몰래 울고, 피었다 시드는 꽃을 보며 울고, TV 연속극에서 누군가 울면 따라 운다. 겨울이 멀었는데 딸이 선물해준 캐시미어 털옷을 꺼내입고, 아무리 돈이 많이 생겨도 딸이 좋아하던 전골도, 머리빗 하나도 살 수 없다며 '돈이 죽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투병 중이었던 딸에게 한 봉지 약만도 못한 글만 쓸 수밖에 없었던, 살과 뼈를 나눠준 몸이지만 허파에 물이 차 답답하다는 데 한 호흡의 입김도 나눠줄 수 없었던 미안함도 시로 썼다. 그는 '차라리 언어가 너의 고통을 멈추는 수면제였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그러다 마침내 '이건 슬픔이 아니라 분노다/ 이건 분노가 아니라 절규다/ 이건 절규가 아니라 무덤이다'(무덤)라고 외친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역시, 딸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헌팅턴비치는 이민아 목사가 생전 지내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중략)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이 전 장관은 날카롭고 단호한 시선으로 세계를 꿰뚫어보는 이 시대의 어른이었지만,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유고시집을 통해 사랑과 공생의 힘, 인간의 선한 마음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확신과 행동, 삶과 죽음의 형태로 순환하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 등을 담은 아름다운 작별의 인사를 남겼다.
그는 소진돼가는 생의 끝에서 오래도록 이 시들을 모아 정리하고, 표지와 구성 등 엮음새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나기 며칠 전, 어렴풋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서문을 불러주며 이 시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212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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