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이라 불릴만큼 안정적이고, 수십 대의 경쟁률을 뚫어야 가질 수 있는 직업, 공무원. 지은이는 9급으로 시작해 7급을 단 직후 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동안 쌓아 올린 호봉도, 1년여만 더 버티면 받을 수 있었던 공무원 연금도 모두 내려놓은 채.
지은이가 퇴직하던 해 대한민국의 전체 공무원 수는 106만632명이다. 106만여 명의 공무원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8년 8개월의 공무원 생활을 하며 겪은 일들과 고민,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말한다. 책 표지에 쓰인 '그만두면 큰일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아서 꺼내보는 이야기'라는 말에서 그의 솔직함이 느껴진다.
책의 첫 챕터, 첫 주제는 '기필코 사무적일 것'이다. 지은이는 "사무적이라는 표현이 공무원이란 단어와 나란히 놓이면 그 뉘앙스의 방향이 중립에서 부정으로 기운다"면서도, "사무적이라는 단어는 공무원을 지켜주고, 막말을 들으면서도 버틸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그는 공무원 생활 내내 사무적이려고 노력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친절이 우러나오는 표정을 유지하는 것. 또한 어떤 일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빠르게 잊으려는 기술 아닌 기술을 연마한다.
하지만 결국 마음에 선명하게 남은 순간들은 사무적이지 못했던 시간들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잠깐 스치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고, 그들이 흘리고 간 인생의 작은 조각들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그의 앞에는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일터는 구청과 동주민센터.
지은이는 동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제일 먼저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 상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주는 충격이었다고 한다. 순도 100%의 사무직이 아니었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눈이 오면 삽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축제 등 지역 행사가 열리면 지원 근무를 나갔다. 선거철이 돌아오면 선거공보물 배송 준비부터 후보자 소개 벽보 부착, 투표소 안내, 봉인된 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는 것까지 도맡았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삶의 면면도 마주한다. 자녀의 사망신고를 하러 온 아버지, 주민등록 재등록을 하려는 노숙인, 첫 부임지인 동네에 전입신고를 하러 온 젊은 신부님, 집에 가는 길을 깜빡 잊어버린 할아버지, 길에서 다친 새끼 참새를 발견하고 살려달라며 들고 뛰어온 어린이 등.
대부분 선한 민원인들이었지만, 가끔 돌발상황도 일어났다. 고성과 폭언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 사람부터 주취자, 폭행을 저지르는 사람 등 악성 민원인들은 지은이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뿐만 아니라 비상근무와 주말근무, 잦은 인사이동, 모니터링과 감사 등은 '기본적으로 예민함을 타고난' 지은이에게 불안감을 더했다.
힘들게 얻은 자리를 버티고자 끝까지 애썼지만, 몸이 탈났다.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심리 상담을 받았다. 세상엔 이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신세한탄이라며 고통을 자신의 모자람 탓으로 돌린 결과였다.
지은이는 씩씩한 척 일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던 날들, 참다못해 엉엉 울어버린 순간들을 솔직하게 꺼낸다. 이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무수한 밤들을 잠못 이루며 자신을 향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왜 이 직업이 내게만 이토록 버거운지, 내 삶에 있어 직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지은이는 몇년 전의 자신처럼,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이해받지 못하는 괴로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을 누군가에게 두 팔을 높이 들어 힘껏 흔들며 응원과 위로를 전한다.
"애쓰셨어요. 그 누구도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쉽게 가늠할 수 없어요. 버텨도 멋있지만 한발 물러나도 비겁하지 않아요." 304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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