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고급, 주류의 의미를 지닌 'A'. 어느날부터 자연스럽게 'B'는 저급, 비주류의 의미로 사용돼왔다.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동안 미술의 역사에서 B로 불린 미술은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소비가 가능한 잘못된 아름다움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도 B의 미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왔고,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B는 이제 대중에게 친숙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단어로 자리잡았다.
정연진 독립큐레이터는 "이들의 미술은 쉽고 발랄한 색채로 관람객의 눈을 현혹하지만, 단지 장식으로서의 미술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현상에 대한 주제 의식을 던지고 있다"며 "과거 B로 불리는 예술에 대한 인식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분류가 아니다. 예술을 표현하고 즐기는 데 정답은 없다"고 했다.
대구 북구 어울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가정의 달 기획전 'A보단 B'는 이같은 'B의 미술'에 주목한다.
1층 갤러리 명봉은 STUDIO 1750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있다. 보라, 파랑, 초록, 빨강 네가지 조명 속에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움직이는 설치물, 위아래를 가볍게 오가는 해파리를 닮은 설치물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설치물의 소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소비하는 비닐. 해양동물을 위협하며 바다 오염의 원인이 되는 것들이 새로운 생명체, 변종으로 태어난 셈이다.
작가는 상상 속 동식물들의 유전자 변형생명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한다. 지금의 먹거리로 인해 변이돼가는 과정을 이미지화한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오브제의 기능을 달리함으로써 다르게 보기, 다시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하 1층 갤러리 금호의 로비에 들어서면 커다란 벽화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재호 작가의 '호야호야의 호이호이: 꽃꽂이'다. 자신의 이름을 반복한, 다소 가볍게 장난삼아 내뱉은 듯한 제목은 일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활기차고 생기로운 꽃의 모습에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인 젊음과 그 유한함을 느낄 수 있다.

갤러리 금호 전시장에는 이서윤, 정민제, 채온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있다. 채온 작가는 일상 속 정물로서의 꽃을 표현하는데, 거대한 화면을 다채로운 색과 거친 붓터치로 채운다. 이것이 어떤 꽃인지, 활짝 폈는지 시들었는지도 명확하게 알 순 없지만 그들이 지닌 생명력과 에너지만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정민제 작가의 작품은 마치 매직아이 같다. 층층이 물감을 흩뿌린 캔버스나 천 위에, 실로 단어를 바느질한다. 한 눈에 잘 들어오는 단어도, 그렇지 않은 단어도 있고, 같은 단어를 보고도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듯 작품을 통해 '언어의 오류'를 얘기한다.
이서윤 작가는 자유로운 붓터치와 색상으로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관련 없는 듯한 이미지들이 모여 한 데 뒤섞인 듯한 느낌이다. 제목도 특이하다. 이를테면 '네 발 달린 값비싼 가구처럼 바이러스만 걱정하고 있을 순 없어'와 같다. 작가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문구나 대화 등에서 자신에게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들을 모아, 자르고 붙여 제목으로 완성한다. 제목은 작품 속에 이미지로 표현된 듯하지만, 전혀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 작가의 의도가 눈에 띈다.
전시 기간 중 5월 5일(목)에는 이서윤 작가가 진행하는 전시연계워크숍이 열린다. 참가자는 선착순 모집한다.
전시는 5월 14일(토)까지 이어지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일요일은 휴관. 053)320-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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