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독일은 왜 잘하는가

존 캠프너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펴냄
英 언론인이자 평론가인 지은이…동서독 특파원으로 활동해
전범국에서 세계의 모범국 된 독일의 힘 분석

독일 국기가 내걸린 베를린의 연방의회 의사당.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독일 국기가 내걸린 베를린의 연방의회 의사당.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독일에서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불법 행위다. 나치 상징을 착용하거나 관련 자료를 선전하는 행위 또한 금지돼 있다. 심지어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이 베를린 중심부 브란덴부르크 문과 의사당 가까운 곳에 있다. 어떤 나라가 수도의 랜드마크 인근에 자신들의 치부를 기념하는 구조물을 세울 수 있을까.

난민 위기가 한창이던 2015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2014년부터 2019년 7월까지 유럽연합에 난민지위를 신청한 인원의 절반 규모인 140만 명의 난민이 독일로 망명을 신청했다. 독일은 백만 명에 달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세계적 현안인 기후 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환경 정책은 반세기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에너지 전환 작업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재생 에너지 비율이 높다. 현재 재생 에너지가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수준. 2030년까지 65%, 2050년까지 80%로 생산량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문화적으론 또 어떤가. 독일의 신문 평론은 매우 수준이 높고, 예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예술단체가 기금 모금을 위해 시간과 예술가 정신을 뺏기지 않는 곳이 독일이다. 인구 300만 명에 불과한 작센 지방엔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2개나 있다.

사회적 결속,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 또한 강하다. 독일은 새벽 교통 신호위반에도 딱지를 떼고, 일요일 점심시간 이웃 노인들을 위해 일체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는 '루헤차이트'란 의무 시간까지 있는 사회다. 1년에 일주일 동안 마을의 힘든 일을 처리하기 위한 '케어보헤'(청소 주간)란 것도 있다. 그밖에도 100만 명이 소방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각종 취미활동을 위한 사교클럽이 2016년 40만 개를 넘어섰을 정도로 함께 뭉치는 사회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이런 사회적 결속이 가능한 것은 사회적 시장주의가 뿌리 내린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감사위원회 의석 절반은 노동자 대표다. 1949년 만든 기본법(헌법)은 세계적 성취로 꼽힌다. 독일인들의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애국심'이라고 한다. 독일인들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 헌법과 국가의 역할을 떠받는다.

독일이 '세계 최상 국가'인 이유 현지 취재를 통해 풀어낸 책이다. 지은이는 20대부터 동서독을 오가며 특파원으로 활동한 베테랑이자,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영국의 언론인이자 국제평론가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전범국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가, 이제는 유럽을 넘어 세계의 모범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를 추척하며,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네 번의 결정적 시기를 찬찬히 살핀다. 1949년 기본법 제정, 1968년 68혁명, 1989년 동서독 통일, 2015 난민 수용 결정 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더욱 단단하고 신뢰받는 사회가 됐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전쟁 이후로 독일인의 국민 의식은 나치 유산에 대한 공포와 수치, 그리고 배워야 할 교훈에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국민 의식 덕분에 독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직면했던 다양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새롭게 마주하는 난민 위기와 극우 세력의 부상 속에서도 독일의 미래는 밝다. 완벽을 추구하고, 절차를 지키고, 공동체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독일의 힘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456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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