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전쟁에 나갔지만 같이 돌아오지 못한 친구 도년이에게.
그대,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는가. 전쟁이 끝난 이후 나는 하루하루 잘 지내다보니 벌써 아흔이 훌쩍 넘었다네. 나는 어쩌다보니 결혼도 하고 자식도 보고 했지만 채 피지 못한 채 전장에서 떠나간 그대를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나는구만.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지. 그대는 참 착하고 좋은, 누가 봐도 '인재'라 할 만한 그런 친구였지. 공부도 잘 했던 걸로 기억하네. 학창시절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겠지만, 전쟁이 그 기회를 산산조각내고 말았지. 그대와 나는 입대해서 전쟁에 나섰고, 3년간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고 있었지.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네. 나는 당시 수도사단 헌병대 중사였고 그대는 6사단에서 중대장으로 전쟁터를 누비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 어렵사리 만나 이야기하며 그대는 내게 편지 한 통을 주었지.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 전해달라며 준 편지…. 편지 속에는 그대의 부모님에게 전달하려는 말들이 빼곡이 적혀 있었어. "전쟁 중이지만 나는 잘 살아있다. 얼마 안 있으면 고향에 가게 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지. 편지를 잘 전달해달라던 그대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일 줄이야….
대구로 가던 그 날, 나는 그대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됐다네. 친구를 잃은 슬픔과 함께 당최 그대의 부모님을 어떻게 뵈어야 하나 머릿속이 아득했다네. 편지를 들고 그대의 부모님께 갔더니 반갑게 맞이하시던 부모님의 얼굴을 7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네. 그대 부모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어찌됐든 자식의 생사는 말씀드려야 하니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지. 미안하지만 차마 그 편지는 전할 수 없었다네. 그대 부모님의 마음이 더 아파오실 듯해서 말이지.
그대가 세상을 떠난게 1953년 2월. 같은해 7월에 전쟁은 멈췄지. 조금만 더 버텼다면 살아서 고향으로 내려가 서로 도우면서 재미있게 살아갔을텐데 왜 그리 빨리 가버렸나. 전쟁이 끝나고 세상은 우리가 젊을 때보다 훨씬 좋은 세상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조차 누려보지 못하고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갈 줄 몰랐어.
나이가 들면서 밤에 잠 못 이룰 때면 그대의 얼굴이 너무 많이 생각나네. 이미 그대가 전해달라는 편지는 살아오면서 여러번 이사하다보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더군. 점점 잊혀질 줄 알았더니 그렇게 안 되고 자꾸 생각나는구만 그래. 아무리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한다지만 그대 같은 사람이 이 좋은 세상을 살아보지 못하고 일찍 떠나간 게 너무 아쉽고 안타까워. 전쟁 동안 서로 다른 전장에 있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게 숱하게 있었을텐데 왜 마지막 그 고비를 못 넘고 나는 살고 그대는 죽었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내 나이도 적지 않으니 언젠가는 그대를 저 세상에서 만날 날이 오겠지. 그 동안은 빛바랜 흑백 사진 속 그대의 모습을 보며 그대를 추억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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