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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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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안중근 의사 사진
안중근 의사 사진
하얼빈(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하얼빈(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총 한 자루와 몇 발의 총알만 지닌 채 하얼빈역의 군중 속에 몸을 숨긴 안중근. 하얼빈역은 대련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철도의 교차점이다.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린다. 키 큰 러시아인들 틈새로 이토가 보였다. 안중근의 내면이 울렁인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이토가 조준선 위에 올라왔고, 안중근의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소설가 김훈이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50년도 더 된 일이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일생의 과업으로만 남겼으나, 최근 건강 문제를 겪으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하얼빈' 집필에 임했다고 했다.

김훈의 신작 '하얼빈'은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일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을 중심으로 쓰인 소설이다. 안중근의 생애를 다룬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민족주의적인 관점과 영웅적 색채는 덜어내고, 인간 안중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년 안중근의 약동하는 젊음과 생명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이토를 살해하기 직전 안중근의 심리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의병 동지였던 우덕순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 거사를 도모하는 장면에선 청년들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들은 대의명분은 물론이고 대책, 자금에 대한 계획도 짜지 않았지만, 주저함이 없다. 무거운 고뇌가 담긴 가벼운 처신. 김훈은 이 장면을 쓸 때가 "가장 신바람 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했다.

"여비는 내게 맡겨라./ 생업이 없이 떠도는 사람이 어찌 돈을 구할 수 있겠는가? 무슨 방편이 있는가?/ 그런 것은 말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묻지 마라."

안중근 의사를 마지막으로 면회하는 모습 사진 출처
안중근 의사를 마지막으로 면회하는 모습 사진 출처 '안중근 안쏠로지'

막상 거사가 가까워지자 안중근은 망설임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 흔들릴 총구와 머뭇거림, 당일 하얼빈역의 구도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감당키 어려운 일을 앞둔 청년의 두려움이었다.

불안은 이토를 쏜 직후에도 가시지 않는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내면을 끈질기게 파헤친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토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품고 있으면서도 근대화, 문명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일본이 봉건에서 근대로 전환하던 현장의 최전선에 있던 이토는 근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다.

소설 속 이토는 24시간으로 나뉜 근대적인 시간 개념을 조선에 주입하려하거나, 순종에 철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며 '문명개화'의 속내에는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를 할애해 안중근의 '몸속에서 버둥거리는 말'을 꺼낸다. 일본인 검찰관과 법관들이 의거 이후 안중근 일행을 조사하며 남긴 신문조서와 공판 기록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안중근의 목소리를 되살린다. 일본 법정에 선 안중근은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며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라고 역설한다. 30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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