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강사의 수업인 줄 알았더니 교실에 가둬 놓고 하루 종일 프랑스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만 보여주는 거야. 한 달 정도 그러려나 했는데 6개월 동안 계속하더라고. 귀부터 열어야 한다는 거였지."
1980년대 고등고시에 합격했던 전직 고위 공무원의 회고다. 외국어 사용이 필수인 직렬은 제2외국어 습득이 필수였다. 요즘이야 방송 콘텐츠와 음향 기기들이 즐비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그렇지 못했다. AFKN(현재의 AFN)을 보는 게 귀를 여는 세련된 방식이었다. 그나마 대구, 포항 등 미군부대가 있는 도시여야 가능했다. 토익 고득점으로 가는 길도 비슷하다. 귀부터 열라는 게 고득점자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원어민 수준의 실력에는 받아쓰기까지 요구된다.
듣기가 쉬워 보여도 말문을 닫은 이들의 말을 끌어내 듣는 건 쉽지 않다. 아예 다른 영역의 듣기다. 김숨 작가의 소설 '듣기시간'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려는 이의 끈질긴 듣기 시도가 다큐멘터리처럼 실렸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끝내 말하지 않다 기록하려는 이의 끈기에 당시를 회상해 뱉어내는 할머니의 말은 올곧은 문장이 아닌 홑단어로 전해진다. 문장이 채 되지 못해 암호처럼 기록된 말들을 끝까지 들으려는 주인공은 무던히 그 시간들을 견딘다. 평생토록 그 기억을 지우며 살았기에 간신히 살아낼 수 있었던, 그들의 신산했던 삶을 우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지율 저하로 곤혹스러운 대통령실과 여당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겸허히 마음먹었다면 마땅히 이런 자세여야 한다. 쓰잘머리 없어 보이는 말도 일단 들어야 한다. 여론 수집에 피아 구분의 정무적 판단이 들어갈 틈이 있어선 안 된다. 일단 듣다 보면 동류항이 설정되고 비슷한 목소리들이 모여 구별된다. 남은 난제는 입을 다문 이들의 목소리다. 선거 때 지지했지만 집권 100일도 채 되지 않아 마음이 돌아선 이들의 의사다. 현장으로 가서 듣는 수밖에 없다. 발품에 감동하지 않는 민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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