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인터뷰]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코로나·우크라 사태로 공급망 위기…자원빈국 한국에 교훈"
자원외교 진두지휘하다 적폐 범죄자로 몰려…격정 토로
"해외자원확보, 일본과 같이 뛰었는데 일본은 성과 달성, 우리는 주저앉았다"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이무성 객원기자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이무성 객원기자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불과 얼마 전 요소수 사태를 겪었다. 누구도 가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값싼 요소수였지만 지난해 하반기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금지하자 난리가 났다. 경유를 쓰는 화물차가 직격탄을 맞았고 전국적 물류대란 우려까지 나왔다.

코로나19 여파에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 세계적 공급망 교란사태가 심화하면서 자원빈국 대한민국에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뒤늦은 후회가 나온다. 이명박(MB) 정부 때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했던 자원외교가 이후 정부에서 잘 계승됐더라면 불안감이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MB 정부 자원외교 지휘관 중 한 명이었던 김신종(71)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을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만났다. 그는 자원외교가 적폐로 규정되면서 공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배임 범죄자라는 누명까지 썼고, 3년여 재판 과정 등 무려 6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도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한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MB 정부 자원외교가 계승됐다면 지금 산업현장의 공급망 불안감이 덜할까?

▶세계적 자원빈국으로 일본과 우리나라가 꼽힌다. 그런데 우리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일본은 꾸준히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뛰었고, 이제 주요 자원의 자주공급률이 50%를 웃돌아 웬만한 자원 위기는 극복이 가능하다.

우리도 MB 정부 때 6대 전략광물(철·구리·니켈·아연·유연탄·우라늄) 자주공급률이 20~30%대에 머무르는 점에 위기감을 느끼고 해외 자원 확보에 나서 30~40%대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후 정부에서 자원외교를 적폐로 몰면서 지금은 20% 이하다.

MB 정부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는 주저앉았다. 중국은 자기 나라에도 자원이 많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 완전히 쓸어담았다. 요소수 사태, 희토류 무기화 등에서 자원부국 중국의 힘자랑을 잘 보고 있지 않는가?

- 해외 자원 개발 정책은 MB가 시작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부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가 박정희 정부 때 사무관으로 공직에 들어왔는데 역대 정부도 조금씩 이 정책을 폈다. 그런데 자원 개발이 쉬운 게 아니다. 선행투자가 많고 결과도 바로 나오지 않아 공격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전임 정부 정책을 계승한 뒤 광물자원공사 등 공기업을 앞장세우고, 그 뒤를 정부가 예산과 제도로 뒷받침하면서 대기업까지 컨소시엄으로 참여시키는 선단식 투자방식으로 해외 자원 개발을 체계화시켰다. 기업인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은 일머리가 있으셨다.

- 광물자원공사 사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나?

▶동력자원부·산업자원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차관보까지 했다. 공직에 더 있을 줄 알았는데 MB 정부가 들어서고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맡았다. 해외 자원 개발을 지휘해보라는 의미였다.

나는 회사 이름부터 바꿨다. 단순히 조력하는 의미의 진흥공사가 아니라 광물자원 개발 주체라는 의미의 광물자원공사다. 5대양 6대주를 모두 쳐다보는 것은 효율이 떨어졌고, 선택과 집중을 위해 남미·아프리카를 주된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사장 재임 4년 동안 남미와 아프리카, 중국, 호주 등지에서 배터리 핵심 원자재인 리튬 광산 등 20곳 정도의 광산을 사들였다. 지구를 24바퀴나 돌 수 있는 거리를 직접 뛰어다니며 이뤄낸 결과였다. 그러나 어렵게 확보했던 이들 광산은 이후 다른 외국자본에 헐값에 팔렸다. 자원외교가 적폐로 몰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 해외 자원 개발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에너지·자원 분야 업무를 30년간 했는데 노무현 정부 때 부처간 국장급 교류가 있어서 환경부 대기보전국장이 됐다. 대기 업무와 자동차가 관련이 있으니 직원들이 해마다 모터쇼를 다녀와 세계의 자동차 기술동향 보고를 했다. 그때만 해도 하이브리드차가 가장 앞선 기술이었는데 직원들이 모터쇼의 전기차 얘기를 했다. 앞으로 자동차 시장 주류는 전기차가 될 것이 자명했고,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이라는 광물도 알게 됐다. 이 광물 확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예측으로 자원 개발 공부를 하게 됐다.

- 해외를 누비면서 고생도 많았을 텐데?

▶리튬 광산을 확보했던 볼리비아를 가려면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꼬박 35시간이 걸린다. 비행기 환승도 2번이나 해야 한다. 현지 공항에 내리면 다시 8시간 동안 지프차를 타고 광산으로 들어간다.

자원민족주의를 앞세운 광산 인근 주민들과 노동조합이 우리를 막아서면서 꼬박 이틀 동안 길바닥에 고립된 일도 있었다. 주민들이 전봇대를 쓰러뜨려 차량 앞뒤를 모두 막아버린 것이다. 아프리카에선 쿠데타가 잦은데 그때마다 군사정부가 광산을 몰수하지 않을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이무성 객원기자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이무성 객원기자

- 아프리카 니켈광산 사업과정에서 헐값에 살 수 있는 지분을 원가에 매입해 공사에 큰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기소된 게 억울하지 않나?

▶박근혜 정부 때 나를 왜 수사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이 압수수색당하면서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고, 밤샘 조사도 받았다. 그러나 신념을 갖고 나라를 위해 일했기에 떳떳했고, 모든 수모를 참고 견디면서 수사에 협조했다. 처음부터 결론을 내려놓은 수사였다.

검찰이 증거도 없이 정황만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불구속 상태에서 1, 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재판은 대법원(2018년 11월15일 무죄 확정)까지 갔다. 지난 10년간 국회 국감장 소환 3차례, 검찰 수사 3차례(박근혜 정부 때 2회, 문재인 정부 때 1회)에다 3심 재판까지 3년 반이나 걸렸다. 하루도 발뻗고 잠을 잘 수 없었고, 지옥을 경험했다.

-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설 것인가?

▶아내도 같은 질문을 한 적 있다.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또 할 것이고,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나는 이 일에 대해 긍지를 가졌다. 오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 사장 재임 당시 국내 폐광을 다시 여는 사업도 했다.

▶경제성이야 국내 광산이 해외 우량 광산보다 떨어진다. 그렇지만 내 것이 있어야 해외에 나갔을 때 협상력이 생긴다. 또 국내 자원 개발 생태계를 보존하는 차원이다. 우리 생태계를 살려놔야 뛰어난 우리 기술도 살아 있게 되고, 이 기술자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다. 돈 안 된다고 갈아엎고 문 닫으면 안 된다. 정말 근시안적 사고다.

- 새 정부에 대해 해외 자원 확보 정책 수립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새 정부가 이 분야에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간 주도로만 하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해마다 결산을 하는 민간기업은 적자가 나면 끌고 가기 어렵다. 긴 안목이 필요한 사업이다. 공기업이나 정부가 앞장서고 민간이 참여하는 선단식 진출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이 분야 경험자들을 열심히 찾아 그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프로필

-대구 경북고·고려대 행정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박사

-행정고시 22회

-산업자원부 주타이베이 상무관·원자력발전과장·전력산업구조개혁팀장·기획예산담당관·공보관·에너지산업국장·자원정책실장·무역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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