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히잡, 그리고 직관(直觀)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미국과 일전을 벌인 이란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경기 전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만 실전은 달랐다. 숫제 한일전이었다. 첫 골을 넣은 이란 선수의 한풀이 같은 세리머니는 아직도 선명하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에서 아르헨티나를 무너뜨린 카메룬의 오맘비크만큼 비현실적인 점프였다. 순간적으로 중력을 무시한 듯했다. 붕 떠오르며 헤더골을 꽂아 넣고 포효하던 이란 선수, 하미드 에스텔리다.

그는 9년간 국가대표로 뛰면서 12골을 넣었는데 109골을 넣은 알리 다에이만큼 인지도가 높다. 이란에서는 그 골을 '세기의 골'이라 부른다. 이란의 역대 월드컵 첫 승리를 이끈 골이기도 했던 것이다.

축구에 전 국민적 성원을 보내는 이란이지만 그러나,1979년 이란 혁명 이후 2018년까지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이 불가능했다. 직관은 2018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부터 가능했는데 그나마 소수에게 허용됐다. 여성용 입장권을 판매하고도 입장을 불허한 적도 있었으니 여자들끼리 풋살 경기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먼 나라 얘기임이 분명하다.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태로 촉발된 시위다. 그런데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했다고 한다.

이란은 카타르월드컵에서 미국과 또 맞붙는다. 그러잖아도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라 16강 진출의 성패가 달린 경기인데 미국전이기에 이란 국민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여성들은 시위의 배후로 지목받은 미국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자국 이란을 응원할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애국심은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둔 이란과 카타르의 최단 거리는 200㎞ 정도다.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거리다. 현지 시각 11월 29일 밤, 많은 이란 여성들의 평화로운 직관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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