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공 내전 당시 장제스(蔣介石)의 국부군(國府軍) 수뇌부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군과 내통하는 간첩이 활개 치고 있었다. 국부군의 움직임은 공산군에게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던 것이다. 장이 마오에게 패해 대만으로 쫓겨간 데는 이런 간첩들의 암약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항일 전쟁과 내전 기간 내내 국부군 참모차장으로 있었던 류페이(劉斐)로, 작전처장으로 앉힌 같은 공산군 내통 간첩 궈루구이(郭汝瑰)와 합동으로 국부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산군에 넘겼다. 만주의 랴오선(遙瀋) 전투, 베이징(北京)과 텐진(天津)의 핑진(平津) 전투와 함께 국공 내전을 공산군의 승리로 이끈 3대 전투인 화이하이(淮海) 전투에서 국부군은 궤멸적 패배를 당했는데 바로 이들 때문이다.
류페이의 배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49년 4월 공산당과의 평화협상 대표단의 일원으로 베이징에 갔다가 협상이 결렬되자 현지에 눌러앉았고, 마오쩌둥으로부터 "인민공화국 건립에 훌륭한 공헌을 한 시민"이란 칭찬을 받았다.
장제스가 초대 교장이었던 황푸(黃埔)군관학교 출신으로 장의 지극한 신임을 받았던 다이룽광(戴戎光)도 빼놓을 수 없다. 1949년 4월 20일 공산군의 양쯔(揚子)강 도하 작전 당시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중간의 요충지 장인(江陰)의 요새 방어 지휘관이었던 그는 부하들에게 총부리를 국부군에게 돌리도록 명령했다. 그 덕에 공산군은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한 채 양쯔강을 건넜고 사흘 뒤 난징에 무혈 입성했다. 이로써 장제스는 끝장이 났다.
1944년부터 장제스의 참모장으로 중국 내 미군 병력을 지휘한 앨버트 웨드마이어 장군은 이렇게 개탄했다. "국부군이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 빗자루 몽당이만 들고도 양쯔강을 지킬 수 있었다."
대만 최전방 진먼다오(金門島) 부대에서 근무한 한 육군 대령이 전쟁이 나면 중국에 항복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중국 측으로부터 2020년 1월부터 최근까지 총 56만 대만 달러(2천440만 원)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공 내전 당시 국부군 고위 장교들의 배역(背逆)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군에서는 이런 반역 행위가 없는지 자신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의 종북은 그런 의심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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