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꺾이지 않는 마음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스포츠 경기의 매력은 '이변'(異變)에 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동서고금의 감동 플롯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 마르고 닳도록 표현해도 질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100년의 월드컵과 비교해 이번 카타르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은 '첨단 기술 월드컵'이라는 것이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부터 비디오 판독, VAR의 도움을 받으면서 판정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번 월드컵은 기술적인 면에서 그보다 한층 나아졌다.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 SAOT(Semi-Automated Offside Technology)가 도입된 것이다.

공인구인 '알 리흘라'부터 그렇다. 센서가 내장돼 있어 골라인 아웃, 오프사이드 판정 등의 가늠자가 됐다. 무선 충전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쯤이야 대수가 아니다. 심판의 눈에 의존했던 방식에서 벗어나면서 경기 결과까지 뒤집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카타르월드컵 조별예선 각 조의 첫 경기 결과가 있은 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나라 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잡은 덕분이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SAOT에 두 골이 무효가 됐다. 모두 골로 인정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기 초반부터 앞서 나간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덜미를 잡히진 않았을 거란 분석이다.

판독 기술에 '운이 70%, 실력은 30%'라는 '운칠기삼'의 입지도 줄어든다. 운의 영역은 선수들이 흘린 땀에 반비례한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운동선수뿐 아니라 수험생에게도 오랜 정언처럼 받들어졌다. 기본 실력이 바탕에 있어야 우주의 기운도 돕는다는 말로 해석하는 게 정석이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도 일맥상통한다. 꾸준한 게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 확정 직후 우리 대표팀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태극기에 써 펼쳐 보였다. 지난 4년 동안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식한 '점유율 축구'에 여러 비판 여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감독과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16강 진출이라는 결과물로 입증해 냈다. 벤투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 '꺾이지 않는 마음'도 이번 쾌거의 바탕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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