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경기 평택시 대형 물류창고에서 화재를 진압하다 급격히 번진 불에 고립돼 순직한 소방관 중 1명은 임용 9개월 차 새내기였다. 2021년 6월 울산 상가건물 화재 때 중상을 입고 순직한 소방관 역시 임용 1년 6개월 된 신참이었다.
저연차 소방관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사례가 이어지는데도, 교육 여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10년간 55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가운데, 5년 차 미만의 비율이 44%(24명)에 이른다.
소방청은 지난해 5월 신임 교육 강화를 포함한 '교육훈련 혁신 4대 추진 과제'를 발표했지만, 대구는 이를 수행할 교육여건이 크게 부족하다. 대구에 소방학교가 없고 소방교육대 또한 협소한 규모로 필요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서다.
◆ 화재 훈련 중요하다는데, 훈련장도 없어
지난달 7일 성서공단 인쇄공장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1년 차 소방관 A(26) 씨는 임용 후 처음으로 대형 화재 현장을 마주했지만, 훈련과 실전은 딴판이었다.
A씨는 "검은 연기와 불꽃, 폭발음은 신입 교육에서 진행했던 훈련과는 많이 달랐다"며 "어떤 상황이 돌발적으로 발생할지 모르고, 폭발 소리 때문에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진압 후 교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최근 대구에서 매천시장 화재 등 대형화재가 잇따르면서 '실화재' 훈련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대구에는 훈련장조차 없다. 유형별 화재 상황을 실전과 유사하게 경험할 수 있는 실화재 훈련은 소방청이 특히 강조하는 현장 교육이다.
현재 전국 13개 소방교육시설(소방학교 9개, 소방교육대 4개) 중 실화재 훈련장을 갖춘 곳은 중앙·부산·광주·경기·강원·경북소방학교 6곳과 전남·제주 소방교육대 2곳 등 8곳이다.
대구소방교육대 관계자는 "대구교육대는 규모가 협소해 실화재 훈련장을 갖출만한 여력이 안 된다"며 "전국 4개 소방교육대 중 대구가 가장 열악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실화재 훈련은 저연차 소방관의 부족한 현장경험을 보완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진압 난이도가 높은 대형화재가 늘고 있어 실화재 훈련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실화재 훈련을 위탁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지역 산업체 특성이나 다중이용시설 등 대구 맞춤형 화재 상황을 학습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대응 불가'…교육 적체 인원 매년 1천700명
소방공무원을 한번에 늘리는 '2만명 충원' 계획으로 인한 교육 적체는 저연차 소방관의 원활한 교육을 더욱 어렵게 한다.
경북소방학교에서 교육 중인 B(26) 씨는 "내년까지 교육을 대기해야 하는 이들이 많아 공백 기간에 아르바이트는 필수가 됐다"며 "임용이 늦어져 경험을 많이 쌓지 못하면 대형 사건을 마주했을 때 불안감이 더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는 지난해 241명의 신규임용자 교육을 계획했지만, 절반을 채우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현재 교육 중이거나 완료한 인원은 106명(43.98%)뿐이다.
나머지 135명은 올해 상반기 소방학교 입교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5월 중앙소방학교에 가는 24명은 11월이 되어서야 임용될 수 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말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도 현장에 투입되기까지는 무려 1년 4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특히 대구는 소방학교가 없어 다른 시도에 100% 위탁 교육을 보내고 있다. 소방학교마다 인원이 정해져 있어 빠른 교육이 힘들다. 교육 기간도 다르고, 훈련 시설도 차이가 커 입교 지역에 따라 교육수준 편차도 발생한다.
중앙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던 대구 강서소방서 소방관 C(26) 씨는 "많은 인원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훈련하다 보니 개개인이 훈련에 익숙해질 만한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아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소방청에 따르면 교육 적체 인원은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약 1천700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방청은 이들을 '현장대응 불가' 인원으로 분류하며 적체현상이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대구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소방공무원 2만명 충원계획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끝나 올해부터는 채용 인원이 정상화될 예정이다. 교육 적체는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장지휘관 자격인증도 더뎌…대구소방학교 신설 유일한 '희망'
지휘관의 현장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2021년 하반기부터 진행하고 있는 '현장지휘관 자격인증제'도 대구에선 속도가 더디다. 지난해 11월 기준 약 310명의 현장지휘관이 실무·면접 등의 평가를 거쳐 자격을 인정받았지만, 대구는 4명에 불과하다.
소방청 관계자는 "자격인증을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이 9개 소방학교 중 3곳 밖에 없어 타지역에서 신청한 인원까지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광주·경북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모든 소방학교에서 인증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예정된 대구소방학교 신설은 유일한 희망이다. 대구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올해 동구 신서혁신도시 부지에 대구소방학교를 신설할 계획이다"며 "대구소방학교가 생기면 저연차 소방관 교육이 지금보다 훨씬 원활해질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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