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연미 디자이너의 세계 명품 이야기] 미니멀리즘과 혁신의 아이콘 ‘프라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나일론 소재의 사용으로 명품의 고정관념 탈피
패션과 예술의 복합적 스페이스 브랜딩 사업으로 확장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와 ‘처치스’, ‘카슈’ 등 보유한 프라다 그룹

2023년 봄 여름 캠페인
2023년 봄 여름 캠페인

◆ 왕실의 로고를 받으며 공식 납품업체로 선정

185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부유한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난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는 외국 여행을 다니면서 디자인의 안목과 견문을 넓혔고 상류사회의 생활을 두루 경험하였다.

1913년, 설립자 마리오 프라다는 동생 마르티노(Martion)와 함께 '프라텔리 프라다(Fratelli Prada, 프라다의 형제들)'라는 간판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 매장을 오픈하여 상류층 고객들을 중심으로 고급 가죽으로 제작된 장갑, 핸드백, 여행용 트렁크와 진귀한 재료를 사용한 도마뱀 가죽 핸드백, 두꺼비 가죽 지갑, 거북이 등 껍데기, 상아 장식이 달린 비단 핸드백 등 사치스러운 여행용 제품들을 판매했다.

마리오 프라다
마리오 프라다

창업 6년째인 1919년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의 공식 납품업체로 지정되어 왕실의 모든 수하물 및 기타 가죽 제품을 제공하며 품질을 인정받았고 프라다 로고에는 사보이 왕가의 문장과 매듭이 포함되어있다.

창업 당시의 첫 번째 매장이자 지금의 본점인 이탈리아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에는 아직도 창업 당시의 간판이 남아있으며 '오제티 디 루소(명품)'라고 쓰여 있다. 호황도 잠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의 대공황 이후, 유럽 경기가 침체되면 프라다 역시 난항을 겪었다.

여자는 사업을 하면 안 된다던 마리오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했으나 그의 아들은 관심이 없었고 결국 1958년 마리오 프라다가 사망하자 그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미우치아 프라다 (프라다 3대 CEO)
미우치아 프라다 (프라다 3대 CEO)

◆ 정치학 전공의 감각적인 여성 '미우치아 프라다'

20년 동안 가업을 이어간 루이자 프라다는 이렇다 할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1970년대 후반 회사는 파산 위기의 곤경에 빠졌다. 루이자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남편도 아들도 사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1977년 그녀의 막내딸인 미우치아 프라다를 불러 절박한 상황을 설명하고 외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게 했다.

1949년생으로 당시 28세의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는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재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그녀가 즐겨 입은 브랜드는 이브 생 로랑과 앙드레 꾸레주와 같은 고급 명품 옷을 즐겨 입었고 공산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아이디어만큼은 감각적인 프라다는 나일론(포코노) 소재를 가방에 도입하여 이슈를 일으키며 프라다의 인기를 급상승시킨 큰 공을 세웠다.

◆ 나일론 '포코노 백'의 센세이션

1979년 새로운 소재를 찾던 미우치아 프라다는 외할아버지가 가죽 트렁크를 수출할 때 포장재로 사용한 나일론 소재를 발견했다. 이탈리아 리몬타에서 군용으로 개발한 포코노 나일론 소재는 폴리아미드로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질기고 방수성도 뛰어나 낙하산, 천막 같은 군수용품을 제작하는데 사용했다.

1985년 미우치아 프라다는 명품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나일론 소재의 가방을 제작하여 명품 브랜드의 획기적인 전환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출시 초기에는 값비싼 명품브랜드에서 나일론 소재의 제품을 출시하자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가웠지만 새로운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남녀 모두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광택이 나는 검정컬러의 나일론백은 토트백과 백팩을 시작으로 선 보였고 금속장식의 역삼각형 프라다 로고도 이때부터 붙이기 시작했다. 실용적인 나일론 백의 인기로 파산위기에 몰릴 만큼 힘들었던 프라다의 경영위기도 점차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좌)와 미우치아 프라다(우).프라다 부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좌)와 미우치아 프라다(우).프라다 부부

◆ 패션계의 파워 커플

미우치아는 시장조사차 들른 무역박람회에서 프라다의 모조품을 발견하고 모조품의 주인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를 만났고, 베르텔리는 모조품 제작을 인정하며 프라다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동업을 제안하였다. 사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파트리치오와 동업을 시작하며 프라다의 사업은 신발, 여성복 라인, 그녀의 이름을 본 따 만든 세컨 라인 미우미우(MiuMiu), 프라다 남성복, 언더웨어, 스포츠 웨어 등을 순차적으로 런칭하며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프라다 카이에 가죽백
프라다 카이에 가죽백

◆ 문화·예술, 스페이스 브랜딩으로 사업을 확장한 프라다 그룹

부부가 된 미우치아와 파트리치오는 1994년 프라다 재단을 설립하여 예술 전시를 기획하고 현대 미술계의 신진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문화, 공연 등을 후원하고 있다. 2009년 한국, 서울에서 공개된 프라다 트렌스포머는 렘 콜하스가 설립한 연구소 AMO가 맡아 디자인했으며 네 개의 기증기를 이용해 네 가지 형태로 변신하는 획기적인 크로스 컬쳐의 전시, 상영 및 라이브가 어우러진 멋진 기획으로 건물은 움직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깬 시도였다.

16세기에 지어진 경희궁 옆에 자리 잡은 프라다 트렌스포머(형태가 변형되는 건축물)는 한국의 역사, 전통, 민속 문화와 극적으로 병치된 21세기의 다차원적인 스페이스 공간으로 이 건축물은 6개월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독특한 비주얼 아트를 소개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램 콜하스와의 협업은 계속되어 2001년 12월 뉴욕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 내에 첫 에피센터 '프라다 소호'를 개장하여 스페이스 브랜딩을 성공하였으며 2015년에는 밀라노의 오래된 양조장을 리뉴얼하여 프라다 재단의 복합 문화공간 '폰다지오네 프라다'를 오픈하며 다채로운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프라다 그룹은 사업의 다각화 일환으로 1824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제과점 파스티 체리아 마르케시를 인수하여 밀라노의 중심가 비아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에 커피&케이크 전문점을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푸드 비즈니스 진출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1873년에 설립된 고급 수제화 브랜드 '처치스(Church's)'와 1963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드라이빙 슈즈 전문 브랜드인 '카 슈(Car Shoe)'를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LG 프라다 폰
LG 프라다 폰

프라다 자수 패브릭 심볼 백
프라다 자수 패브릭 심볼 백

프라다 심볼 자수 패브릭 핸드백
프라다 심볼 자수 패브릭 핸드백

◆ 패션과 테크놀로지, 프라다의 콜라보레이션 협업

2007년 프라다는 LG전자와 협력해 프라다폰을 선보였다. 기술적 혁신과 디자인, 액세서리, 등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프라다와 공동으로 추진하며 창의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은 패션 리더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2012년 현대자동차와 프라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1,200대 한정 생산의 제네시스 프라다를 제작하였다. 희소가치를 높인 고품격 세단의 제네시스 프라다는 차량 내부의 시트를 사피아노(프라다 가방의 대표 가죽) 가죽을 사용하였고 실 굵기와 땀 수까지 프라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관여하였다. 프라다의 로고와 시리얼 넘버를 부착하였고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시도와 함께 패션 브랜드와 자동차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점에서 큰 화재가 되었다.

그 외에도 프라다는 이탈리아인 최초로 유일하게 레드불 에어 레이스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우승한 전문 비행사이자 스턴트맨 운동선수인 다리오 코스타와 함께 파일럿 수트를 맞춤제작 했다. 기능적인 디테일과 함께 혁신적인 소재의 이 수트는 고성능 방염 직물 및 신축성이 특징인 노멕스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소재로 제작되었다. 선수의 움직임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 통기성 있는 스트레치 메쉬 소재는 장식적이고 동시에 기능적이며 팔꿈치와 무릎 보호 부분을 해부학적 방식으로 디자인한 특수 합성 섬유로 제작되었다.

프라다 프라다 트라이앵글 숄더 백
프라다 프라다 트라이앵글 숄더 백

◆ 프라다의 새로운 크레이티브 디렉터 영입

벨기에 태생의 라프 시몬스는 가구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으나 패션에 관심이 많았으며 1995년 자신의 이름 딴 남성복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라프 시몬스는 2005년 당시 프라다 그룹의 소유 브랜드였던 질샌더의 총괄 크리에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 다채로운 컬러 감각과 미니멀리즘적 구조와 형태미 대담하게 표출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이후 디올과 캘빈클라인에서 활동하며 많은 팬들을 보유한 스타디자이너로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프라다의 공식 발표를 통해 2020년 4월부터 프라다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으며 미우치아 프라다와 함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디자인의 방향성에 맞춰 협업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프라다 미니백
프라다 미니백

2019년부터 프라다는 '리나일론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버려지는 폐기물을 재사용하는 '에코닐'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여 2022년에는 아디다스와의 리나일론 컬렉션을 진행하였고 프라다와 미우미우에서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쇼 셋업으로 활용된 도자기와 목재를 지역 기업에 기증하였다.

버리는 물건을 최소화하여 환경 파괴를 줄이고 동물을 보호하는 럭셔리 기업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시작이라 생각되며 패션을 혁신적으로 선도한 프라다의 파급력만큼 환경에 대한 선한 영향력 또한 지속되길 바란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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