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 특수 수영장 있어도 장애 학생은 못 쓴다…멀어진 수영선수의 꿈

세명학교 내 특수수영장…"학교 소유가 아니라 마음대로 못 써"
일반학교 생존수영 프로그램에 세명학교 소속 수영선수는 지원 한계
대구시교육청 "코로나 펜데믹 때문…장애인 수영 프로그램 운영 중"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황윤호(14·가명) 군은 지난 3월 전국장애인체전의 출전권을 따냈지만 학교 내 특수수영장을 사용하지 못해 월성동에 있는 사설 센터를 이용 중이다. 한소연 기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황윤호(14·가명) 군은 지난 3월 전국장애인체전의 출전권을 따냈지만 학교 내 특수수영장을 사용하지 못해 월성동에 있는 사설 센터를 이용 중이다. 한소연 기자

중증 자폐성 장애를 가진 특수학교 소속 수영 꿈나무가 정작 교내에 있는 특수 수영장은 사용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다. 일반 학생들의 수영 수업에 밀려 특수학교 학생에 대한 수영 수업은 뒷전이 됐기 때문이다. 사설 스포츠센터를 전전하며 실력을 키워온 수영 꿈나무가 이달 있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출전권을 따냈지만 대구시교육청과 학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장애인 수영선수는 수영도 못하나요"

지난달 26일 오후 3시 월성동 한 아파트 내 스포츠센터 수영장. 초등학교 5학년 수영선수 황윤호(14·가명) 군은 센터를 찾는 회원들의 발길이 잠잠해지는 틈을 이용해 전국장애인체전에 나갈 연습을 한다. 달서구에 있는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인 세명학교에 다니는 황 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1급의 수영선수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부산스럽게 손을 휘졌던 황 군은 코치의 지시에 사뭇 진지해지더니 이내 물 위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그가 수영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안 황 군의 어머니 송아름(45·가명) 씨는 2018년부터 아들의 꿈을 살뜰히 챙겼다. 2019년 세명학교 진학을 결심한 이유도 세명학교 내 특수 수영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명학교에는 25m 레인 6개 규모의 '어울림수영장'이 있다. 가족 탈의실이 있고 특수아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 지적장애인이 안전하게 수영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초등과정을 2년 유예한 황 군은 2019년 세명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하자마자 송 씨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어울림수영장은 세명학교 소유가 아닌 대구시교육청 특수교육원 소유라 세명학교 학생이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교육청 소속 초등선수단 일부에게만 연습이 허용됐다.

황 군은 아쉬운 대로 대구에서 유일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달구벌재활스포츠센터(달서구 용산동)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달구벌재활스포츠센터도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이용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어머니 송 씨는 "달구벌스포츠센터는 가족탈의실이 한 칸밖에 없어 탈의하고 씻길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공중화장실 장애인 칸에서 세숫대야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고 하소연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황 군은 같은 자폐 스페트럼 장애 자녀를 키우는 다른 학부모의 도움으로 2021년부터 월성동 사설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마저도 센터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센터장 A씨는 "장애인 체육에 대해 관심이 많아 회원이 없는 점심시간 대에 수영을 좋아하는 장애 아동에게 시설을 제공해주곤 했다"며 "윤호 군의 사정이 안타까워 면접을 본 후 아이의 장애 등급 등을 고려해 받아주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이름 달고 출전하는데..."

5년 동안의 지난한 연습 끝에 황 군은 지난 3월 장애인 수영대회 전국체전 출전권을 따냈다. 세명학교 소속으로 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특수교육원은 장애를 가진 수영 유망주에 대한 지원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황 군을 위해 어머니 송 씨는 학교 측에 수영장을 쓰겠다고 요청했지만 이번에도 거절을 당했다.

송 씨는 "비장애아동 생존수영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라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특수교육원이 운영하는 시설이지만 장애를 가진 학생은 쓸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울림수영장 사용 일정표에 따르면 이달과 다음달은 일반 학생들의 생존수영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황 군이 전국체전 준비를 위해 수영장을 쓰려면 생존수영 프로그램이 없는 수요일만 이용할 수 있다. 수영 선수인 황 군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특수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영 수업 지침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지난 2019년 교육부가 초등학교 생존수영 매뉴얼을 발표했지만 장애 학생에 대해선 관심이 부족했다. 장애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되지 않은 사이 시교육청 소유의 수영장은 자연스럽게 일반 학생들 위주로 운영됐다.

추대엽 대구시교육청 특수교육원 장학관은 "특수학교 학생에 대해선 교육부가 따로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며 "생존수영 의무 지침이 확대되면서 세명학교 주변 학교들도 세명학교 내 수영장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생존수영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영장이 마땅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대구시교육청은 다음 달부터 황 군을 위한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추 장학관은 "이달 중순에 있을 체전까지 2주가량은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교육청은 생존수영 수업이 끝나는 7월부터 장애학생이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은성 대구시교육청 특수교육원 장학사는 "올해부터는 사설 수영장에서도 생존수영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7월부터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위주로 수영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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