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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뉴 관광지] <23>칠곡 매원마을과 호국의 다리

400여년 역사 매원마을…6·25전쟁 상흔 딛고 더 화려하게 피어나다
매화 꽃잎처럼 8개 산 둘러싼 매원마을…전쟁 포화로 고택 소실된 영남 최대 반촌
한옥·양옥 공존…국가등록문화재 예고
왜관철교, 애국동산, UN승전기념비…나라사랑 되새겨

경북 칠곡군 매원마을. 매일신문 DB
경북 칠곡군 매원마을. 매일신문 DB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梅院)마을은 산등성이가 매화꽃 떨어지는 모양이라 얻은 이름이다. 이 소담한 전통마을은 마을 입구에 서면 천천히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매원마을은 조선 시대 영남의 반촌(양반 집중거주지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400여년 역사를 품은 유서 깊은 마을은 구석구석 곡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전쟁 때는 포화로 인한 폐허의 아픈 상처도 갖고 있다.

또 매원마을 인근 곳곳에도 6·25전쟁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낙동강 호국의 다리(왜관철교)를 비롯해 애국동산, UN승전기념비, 낙동강 평화음악분수 등을 둘러보며 평화와 나랑사랑을 되새길 수 있다.

◆마을 주변 둘러싼 8개 꽃잎 같은 산

왜 매원마을이 됐을까? 매화 꽃은 꽃심 주변에 8개의 꽃잎이 있다. 8개의 꽃잎은 마을 주변 야산이다. 그리 높지 않는 해발 200~300m의 산들이 동네를 멀리서 빙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동쪽에는 죽곡산, 서쪽에는 산두산, 남쪽에는 아망산, 북쪽에는 용두산이다. 그 사이사이에 또 산들이 있다.

동북방에는 유학산(遊鶴山)이 있다. 학이 논(遊)다는 뜻이다. 동남방에는 황학산(黃鶴山)이 있고, 서북방에는 소학산(巢鶴山)이 있다. 서남방에는 금무산(錦舞山)이 있는데 비단이 춤춘다는 뜻이다.

사방팔방 8개의 산은 매원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매원마을은 매화꽃의 수술인 셈이다. 매원마을은 꽃의 수술 부분에 해당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커다란 매화의 가운데 부분이다.

매화나무의 뿌리 부분은 '돌밭(石田)' 마을이다. 매화나무 맨 위쪽의 가지 부분은 '웃갓(上枝)' 마을이다. 돌밭과 웃갓 마을은 매원마을과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거리에 있다. 그리고 매원마을 자체에도 다시 상매(上梅)·중매(中梅)·하매(下梅)가 있다.

▶광주 이씨 삶의 터전 매원마을

광주 이씨(廣州李氏)들은 이 매원마을에다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았다. 원래 매원마을엔 야로 송씨, 벽진 이씨가 주로 살았다. 1595년(선조 27년)쯤 광주 이씨 집안의 석담 이윤우(1569~1634)가 아들 이도장(1603~1644)을 데리고 이주한 뒤, 이도장의 차남 이원록(1629~1688)이 뿌리를 내리면서 집성촌을 이뤘다. 매원마을은 영남 최고의 부촌으로 꼽히던 동네였다. 구한말 쯤에 천석군이 7명, 만석군이 3명이나 있었다. 호남이 아니고 영남에 만석군이 3명이나 있었다는 게 놀랍다.

매원마을은 1900년대 초엔 1천여 명이 살았던 영남 최대 반촌이다. 낙동강 방어선의 요충지였던 칠곡은 한국전쟁의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였다. 매원마을은 한국전쟁 때 전쟁의 포화로 폐허가 됐다. 당시 미군은 북한군이 점령했던 광주 이씨 박곡종택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대를 폭격했다. 마을의 고택은 이때 대부분 소실되고 60여 채만 남아 있다. 감호당, 지경당, 해은고택, 진주댁, 중방댁 등이 보존되고 있는 고택이다.

한옥과 양옥이 공존하며 180여 호가 사는 한적한 마을. 조선 시대에 쌓은 옛 토담과 고택복원사업으로 최근에 축조된 담이 어우러진 곳. 과거와 현재를 함께 품은 마을 돌담길을 걸어보며 삶을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경북 칠곡군 매원마을. 매일신문 DB
경북 칠곡군 매원마을. 매일신문 DB

◆국가등록문화재 된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14일 매원마을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한때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지만, 현재는 고택 60여 채가 남아 있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대표적인 동족(同族) 마을 중 한 곳이다.

이 마을에서는 민속적 요소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을의 소나무밭은 풍수지리상 서쪽 즉, 백호(白虎)에 해당하는 경계 지형을 보강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이상적인 주거지를 만들기 위한 전통적 노력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인 동제(洞祭)에서는 지난 400여년간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온 구성원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근현대기를 지나오면서 이뤄진 마을 영역의 확장과 생활방식 등의 변화 속에서 다른 영남지방의 동족 마을과 구별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경북 칠곡군 호국의 다리. 매일신문 DB
경북 칠곡군 호국의 다리. 매일신문 DB

◆전쟁의 아픔을 안고 있는 호국의 다리

매원마을에서 차로 10여분만 가면 낙동강 호국의 다리(왜관철교)를 만날 수 있다. 호국의 다리는 6·25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호국의 다리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였다.

현재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된 이 철교는 1905년 1월 일제강점기에 세워졌으며,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를 기리기 위해 호국의 다리라고 부르게 됐다.

다리는 100년 이상 된 트러스교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축조공법은 I형의 콘크리트 교각으로 화강암을 감아 의장이 화려하고 지면에 닿는 부분을 아치형 장식과 붉은 벽돌로 마감하는 등 근대 철교에서 장식성이 높은 보기 드문 형태의 철교이다.

왜관철교는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경간 1개가 폭파됨으로써 북한군의 추격을 따돌린 이후 승리의 기회를 잡게 해 준 주역이 됐다. 왜관철교는 경간을 폭파시키면서 북한군의 남하는 막았으나 많은 피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경간은 전쟁 중에 상판만 복구되었으며, 철교는 1979년에 안전상의 문제로 전면 통제되기도 했지만, 1993년에 인도교로 완성됐다. 지금은 칠곡 주민들에게 산책로이자 저녁에는 화려한 조명을 자랑하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왜관철교 맞은편에는 칠곡 (구)왜관터널이라는 또 다른 문화재가 있다. 이 터널은 등록문화재 제285호이다. 폭이 4.84m, 높이 3.15m, 길이가 70~80m 정도의 터널이다. 1950년 경부선을 위해 개통되어 석조와 붉은 벽돌을 이용해 말굽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입구는 화강암으로 마감됐으며, 입구 아치는 정점에 이맛돌을 둔 반원형 아치 모양을 하고 있다.

이밖에 칠곡 애국동산은 독립애국지사, 6·25전쟁의 순국자들의 추모재단과 낙동강전투의 UN승전기념비를 세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고 있다.

경북 칠곡군 호국의 다리 평화음악분수. 매일신문 DB
경북 칠곡군 호국의 다리 평화음악분수. 매일신문 DB

◆군민들의 쉼터 낙동강 평화음악분수

칠곡군은 2021년 7월 호국의 다리 인근에 평화음악분수를 만들어 군민들의 쉼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평화음악분수는 최고 분사 높이 55m로, 55일간 계속된 낙동강 방어선전투를 디자인 모티브로 삼았다.

가로 62.5m, 폭 20m 타원형 수조 중앙에 태극무늬의 원형으로 눈동자를 형상화하고, 분수대 광장 바닥에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비상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수백여개의 LED조명과 무빙 라이트·레이저 등의 조명으로 이색적인 야간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여름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평화음악분수는 여름 밤에 군민들이 시원한 낙동강 바람을 맞으면서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호국의 다리 조명과 함께 어우러져 칠곡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낙동강의 아름다움은 물론 호국의 다리의 역사성과 평화를 기원하는 담은 평화음악분수가 군민 및 관광객들에게 삶의 쉼터는 물론 힐링의 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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