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기술과 인간

최윤정 대덕문화전당 공연전시기획담당 주무관

최윤정 대덕문화전당 공연전시기획담당 주무관
최윤정 대덕문화전당 공연전시기획담당 주무관

오펀블랙(Orphan Black, 2013~2017)이라는 캐나다 드라마가 있다. 복제인간을 다룬 이 작품은 총 50부작에 달하는 대하드라마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들이 서로가 복제인간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그 진상을 파헤쳐가는 스토리이다.

외형만 같을 뿐 이름도, 성향도, 살아온 삶도 다른 복제인간들이 점차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의지하고 함께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로 인해 한 명의 배우가 1인 10역 이상을 해내는데, 전방위로 활약하는 주인공의 연기력과 함께 매 시즌 이어지는 탄탄한 스토리가 압권인 작품이다. 특히 진보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 더욱 인상 깊게 봤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수많은 DB를 분석해 패턴을 파악하고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는 슈퍼컴퓨터의 존재를 필자는 그 대결을 통해 비로소 실감했던 것 같다.

학자들은 현재를 4차 산업의 시대로 분류한다. 1, 2차 산업혁명으로 명명되는 시대에는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고 오늘날의 기계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학습 능력과 인공지능 등의 기술력으로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기술 발전의 이점은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고 '여가(餘暇)'라는 개념을 선물했다. 이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토록 하니 과연 인류의 진보라 자부할 만하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문화예술 영역에도 깊게 스며들고 있다.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 AI 연주자와 지휘자, 넥스트 렘블란트 프로젝트 등의 사례를 보면서 인간이 가진 창의력의 분야까지 넘보는 기술력에 필자는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추세라면 우리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정말 올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철학자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술 중심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길은 예술에 있다"고 주장했다.

예술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루이스 멈포드의 주장을 해석해보면 결국 해답은 인간에게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을 이끈 기술력의 원천도, 가상 현실과 가상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화예술 영역의 중심에도 모두 '인간'이 있다. 이에 필자는 기술이 갖지 못하는 것을 '인간성'이라 하겠다. 산업의 진화만큼 '인간성'의 중요도와 영역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이에 산업의 기술력과 인간의 존엄성이 '우열(優劣)'과 '대안(代案)'이 아닌 '공존(共存)'과 '화합(和合)'의 관계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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