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예술기행] 우즈베키스탄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트란스옥시아나 지배한 소그드족, 칭기즈칸 침략으로 완전히 사라져
1965년 아프라시압 궁전 터 발굴…4개 벽면 총 44m 대형 벽화 찾아
깃털 달린 조우관에 큰 칼 찬 2명…사학계 다구 '고구려인 모습' 추측

구르 아미르 영묘.구르 아미르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투르크와 몽골의 정복자 티무르의 묘이다.
구르 아미르 영묘.구르 아미르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투르크와 몽골의 정복자 티무르의 묘이다.

스키타이, 흉노, 소그드, 투르크, 돌궐, 알렉산더, 칭기스칸, 마르코 폴로… 이 단어들에 낭만적인 상상을 해보지 않은 이 있을까.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되기 이전까지 NHK가 제작한 '실크로드'의 감미로운 ost에 가슴 설레지 않았던 이 또 있을까. 당시로선 갈 수 없던 땅 둔황과 누란, 타클라마칸, 파미르를 화면으로 보며 사막을 건너는 대상(隊商)들과 낙타 목에 달린 청아한 방울 소리에 고대 왕국과 드넓은 초원을 꿈꾸지 않은 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1970년대 초, 나는 늘 사회과부도의 국가명과 그 나라의 수도를 색색 연필로 표시해보거나 친구와 눈을 감고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으로 찍는 놀이를 하곤 했다. 가끔 태평양이나 대서양에 빠지면 상대의 머리에 알밤을 놓으며 깔깔대곤 했었지. 그때 우리는 꼭 어른이 되면 함께 지평선도 보고 사막도 보러 가자 약속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나는 몇 해에 걸쳐 실크로드 도시 거의 모든 곳을 가볼 수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여, 그 약속 기억하고 있니.

우즈베키스탄의 사막 도시인 부하라에 있는 카란 모스크
우즈베키스탄의 사막 도시인 부하라에 있는 카란 모스크

◆사라진 낙타 대상 소그드족과 초원의 지배자 티무르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옥수스강 너머의 땅)는 중앙아시아 서쪽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아강 사이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대부분, 카자흐스탄 남서부를 이르는 라틴어 지명이다. 이 지역은 이스탄불처럼 고대 동서 문명의 통로이자 십자로여서 아시아와 유럽의 패권을 잡으려면 반드시 차지해야만 하는 땅이었다. 말 그대로 세계의 전장터였으며 영웅호걸들의 각축장이었다. 그리하여 트란스옥시아나 땅의 운명은 20세기까지 파란만장, 신산스럽기 그지없었다.

기원전 2천2백년경부터 인도아리아인의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아케메네스왕조의 페르시아,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알렉산더 대왕의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이슬람제국, 우마이아왕조, 압바스왕조, 호라즘,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차카타이 한국 등이 1370년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대왕이 제국을 세우기까지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트란스옥시아나의 역사다.

2011년 여름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로 갔다. 이미 수도 타슈켄트에서 우리의 광개토대왕으로 여겨진다는 티무르의 동상과 유적들을 도시 곳곳에서 보고 온 터라 레기스탄광장의 거대한 티라카리, 셰르도르, 울르그벡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 교육기관)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마침 독립 20주년 행사 연습을 하고 나오던 수많은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의 미모에 깜짝 놀랐는데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스텝 유목민, 중국까지 한데 섞인 다민족 혈통의 위력인 듯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를 대표하는 광장인 레기스탄 광장.현재 우즈베키스탄의 50숨짜리 지폐에 이곳 광장이 그려져 있으며, 국가적인 대규모 경축행사나 명절, 기념일 행사가 열린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를 대표하는 광장인 레기스탄 광장.현재 우즈베키스탄의 50숨짜리 지폐에 이곳 광장이 그려져 있으며, 국가적인 대규모 경축행사나 명절, 기념일 행사가 열린다.

트란스옥시아나의 종교 또한 역사적 특성상 뒤섞이거나 정복당해 종속되기도 했는데 놀라운 것은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그드족의 존재였다. 조로아스터교(마니교)를 신봉하며 한때 지역을 패권했던 그들이 자취를 드러낸 것은 1965년 사마르칸트 동북쪽 아프라시압 궁전터에서 도로 설치를 위한 사전 발굴조사를 하던 중 상부가 잘려나간 벽화가 발견되면서 부터였다.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던 7세기 그 시대 소그드의 벽화였다.

소그디아나는 이미 칭기스칸의 침략으로 먼지처럼 사라진 나라였고, 이슬람교가 유입된 이후 조로아스터교도들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1405년 티무르가 명나라 원정길에서 병사한 후 1500년 티무르제국은 투르크계 우즈베크족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부하라, 히바, 코칸트칸국(삼한국)으로 나뉘어졌다가 18세기 말 준카르가 청나라에 망한 뒤 러시아제국, 구(舊)소련에 병합되었다가 1991년 우즈베키스탄으로 독립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너뜨린 제국의 대왕 티무르를 국가 시조로 삼고 있다.

아프라시압 궁전 서쪽 벽화(오른쪽 끝, 조우관을 쓴 두 명의 한반도인)
아프라시압 궁전 서쪽 벽화(오른쪽 끝, 조우관을 쓴 두 명의 한반도인)

아프라시압 궁전 서쪽 벽화(조우관을 쓴 두 명의 한반도인)
아프라시압 궁전 서쪽 벽화(조우관을 쓴 두 명의 한반도인)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속 한반도인

1965년 폐허가 된 텅 빈 언덕 아프라시압 궁전 터에서 상부가 거의 훼손된 4개 벽면 총 44미터 길이 초대형 벽화 발굴은 세계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벽에 그려진 차가니안, 차치, 티벳, 튀르크, 당, 고구려 등 세계 각국의 외교사절들은 7세기 소그디아나가 실크로드 중심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한 것이서 더욱 그러했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사학계를 들끓게 한 것은 깃털이 달린 조우관에 삽수(揷手, 소매 안으로 손을 맞잡는 것)를 한 채 환두대도(環頭大刀, 둥근고리자루큰칼)을 찬 한반도인의 존재였다.당시 사마르칸트는 적대국 구(舊)소련의 영토였던지라 일본 학자들이 증명하여 우회적으로 우리 학계에 알려온 것이었고, 실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였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는 티무르(Timur, 1370년~1405년) 치세 말년, 그가 건설에 흥미를 느끼며 사마르칸트에 다량의 대형 건축물 축조를 명령하는 과정에서 건설된 모스크이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는 티무르(Timur, 1370년~1405년) 치세 말년, 그가 건설에 흥미를 느끼며 사마르칸트에 다량의 대형 건축물 축조를 명령하는 과정에서 건설된 모스크이다.

2011년 이상기온으로 섭씨 5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소그디아나 바르후만왕(Varkhuman, 拂呼缦, 640년~670년 재위)의 딸 공주 혼례식 장면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를 보고 있자니 묘한 느낌이었다. 채색이 거의 떨어져 나간 벽화에서 실루엣만 남은 장끼 깃털을 꽂은 우리 고대 조상이 8천㎞를 가로질러 외교사절로 당도한 모습이라니.

우리 가이드는 당시의 정세로 보아 당나라와의 친분이 두텁고 삼국통일을 이뤄 재정이 풍부했던 신라의 사절이라 설명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연개소문이 제1, 2차 고당전(高唐戰) 시기 설안타국과 철륵에 당나라를 후방에서 공격해달라 보낸 고구려 사절이란 것이 사학계 다수의 의견이고 일부에서는 그 먼 곳까지 한반도인이 갔을 리 없고 그저 풍문에 전해들은 한반도인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고도 한다. 726년 신라 고승 혜초가 소그디아나를 지나갔고, 751년 고선지 장군이 사마르칸트 외곽에서 전투를 벌인 사실을 간과한 것인가.

아프라시압 박물관
아프라시압 박물관

박물관에는 구(舊) 소련 고고학자들의 발굴 당시 사진과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기념품이라는 칼, 은화, 칠보 꽃병, 테라코타, 채문토기, 귀금속품 등이 다소 허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보는 벽화는 발견 당시 사마르칸트의 통치자 저택 안에 있던 것을 벽째 뜯어와 실제 크기로 재생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그곳에서 고대 조상을 만난 것에 무더위도 잊을 만큼 우리는 감동해 좀체 자리를 뜨지 못했다.

현재 아프라시압 벽화는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두 인물을 기려 우리나라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사업으로 디지털로 복원하여 컴퓨터 그래픽 영상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중국이 서북공정 포섭의 일환으로 대규모 예산 지원과 4D 콘텐츠 체험관 건설을 하는 등 맞불을 놓아 사마르칸트의 작은 박물관에서 현대외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2021년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이 방한하여 우리나라와 고대부터의 오래된 인연을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타고난 실크로드 상인이었던 소그드족 속담 '손에는 아교를 입에는 꿀을 바르고 장사를 하라.'가 생각나 혼자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기원전 327년 트란스옥시아나로 진군했던 알렉산더 대왕과 사랑에 빠져 그의 첫 번째 아내가 된 록사나와 7세기 양귀비와 염문을 뿌리다가 '안사의 난'을 일으켰던 안녹산 역시 소그드인이다.

티무르의 손자 울르그 벡은 우리 세종대왕처럼 과학과 학문을 장려해 천문대를 세웠고 그의 손자 바브르는 우즈베크족에게 쫓겨 북인도에서 무굴제국을 세웠다. 또 그의 손자 샤 자한은 그 유명한 타지마할을 지어 아름다운 사마르칸트를 설계 건설한 티무르의 자손임을 증명했다.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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