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운석의 전통주 인문학] <1> 막걸리, 이젠 가장 젊은 술!

막걸리가 젊어지고 있는 중심에는 젊은 양조인들이 있다. 올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삼해주 대회에서 젊은 양조인들이 시음을 하고 있다.
막걸리가 젊어지고 있는 중심에는 젊은 양조인들이 있다. 올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삼해주 대회에서 젊은 양조인들이 시음을 하고 있다.

막걸리는 싸구려 술이다? 중장년층이 즐겨찾는 '아재 술'이다? 천만의 말씀!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전히 '아재'일 수밖에 없다. 막걸리는 이제 가장 젊은 술이다. 대구는 '아직'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서울은 '이미' 시장이 그렇게 변했다.

서울에선 요즘 전통주점과 막걸리 바(Bar)가 대세이다. 여기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는 대부분 한 병에 2만원이 훌쩍 넘고 5만~6만원대 프리미엄 막걸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내 분위기도 '힙한 감성'으로 가득해 젊은층 사이에선 핫한 데이트장소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 막걸리 덕질 늘어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자리잡은 'ㅇ술집'의 메뉴판은 '아재'들이 보면 막걸리 가격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다. 맑은 술(청주) 한 병에 3만원~8만 8천원, 탁주는 2만 8천원~5만 5천원 선이다. 물론 이곳을 찾는 주고객은 젊은층이다.

지난달 서울 삼성동 코엑스 1층에서 열린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는 엄청나게 몰려든 인파로 홍역을 치렀다. 주말 3일간 5만여명 넘게 몰렸는데 방문객 중 절반 정도가 20대 여성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박람회장 내부의 전통주 섹션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지만 상당수는 입장도 못해보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비싸도 사먹는 단계를 지나 직접 빚어 마시는 '막걸리 덕질'도 대폭 늘어났다. 전통주 전문인력 양성기관인 서울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진행하는 3개월 과정의 전통주 수업은 현재 대기하고 있는 인원만 해도 수백명이다. 이 수업을 들으려면 대략 1년 6개월 정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한국가양주연구소 측은 "불과 몇 년 새 젊은층 수강생들이 대폭 늘어나 최근의 교육생들은 대부분 20~30대"라며 "이들이 열정적으로 생산과 소비시장에 뛰어들면서 확실히 막걸리업계가 젊어졌다"고 했다.

젊은 양조인들이 강원도 원주의 모월양조장에서 시음을 하고 있다.
젊은 양조인들이 강원도 원주의 모월양조장에서 시음을 하고 있다.

전통주전문 교육기관을 수료한 젊은층들 중 상당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발판으로 직접 전통주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요즘은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양조장 설립에 적극적이다. 소규모 주류제조가 가능해지면서 설립 초기 비용부담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젊은 양조인들이 대거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으면 인터넷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젊은 양조인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

힙한 청년들이 만든 힙한 막걸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대구경북에도 몇몇 청년들이 우리술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통누룩을 쓰면서 우리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가 하면 새로운 시도로 우리술의 경계를 넓혀나가기도 한다.

◆쌀, 물, 누룩만으로 빚는 전통주, 경산 옥향약주

옥향탁주를 맛본 건 희한하게도 수제맥주 강의를 할 때였다. 누군가 옥향탁주를 가져와 시음을 하게 되었고 바로 맛과 향에 매료됐다. 옥향탁주는 쌀, 물, 누룩만으로 빚는 전통주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아스파탐 등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만드는 전통방식의 우리술이다.

옥향탁주 강석태(오른쪽)씨와 어머니 최경옥씨
옥향탁주 강석태(오른쪽)씨와 어머니 최경옥씨

옥향주는 '농업회사법인 한장군'의 강석태(37) 이사가 빚는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5년 전 어머니를 돕기 위해 전통주 사업에 뛰어들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다고는 하지만 전통주의 맛과 향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꼬박 5년을 양조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술빚기에 몰입했다.

강 이사는 술은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고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술은 효모가 만든다. 사람은 그저 효모가 제 역할을 하도록 온도 등 제반 여건만 갖춰주면 된다. 완전 자동화시킨 양조장이 아니라면 상황에 따라 온도를 맞춰주고 제때 덧술을 해야 해서 퇴근한다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 이렇게 호되게 배운 덕에 지금은 탁주 뿐 아니라 약주 생산까지 도맡고 있다.

옥향 탁주 약주
옥향 탁주 약주

내년 상반기엔 새로운 양조장을 신축해서 이전을 할 계획도 있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전통주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데도 힘쓰겠다고 했다.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는 건 어머니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전통누룩은 장점이 많습니다. 좋은 누룩을 쓰면 술의 맛과 향이 풍성하면서 더 고급스럽죠. 이게 전통주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옥향주를 개발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십 년 간 전통주의 가치를 지켜온 어머니 최경옥(58) 씨의 말이다. 강 이사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경산 지역특산주인 대추 약주와 고급화시킨 대추 탁주도 생산해낼 계획이다.

지금은 양조장 설비 탓에 주문이 밀려들어도 더 이상 생산해낼 여력이 없지만 양조장 신축 후엔 몇몇 종류의 우리술을 더 개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잘 빚은 우리술은 맥주나 와인에 비해 결코 맛과 향이 뒤지지 않는다는 그는 당찬 청년 양조사이다.

"다양한 우리술을 공부하고 빚으며 전통주의 우수성을 알리는데도 조금이나마 책임감을 가지겠습니다"

석창호 달성주조 대표
석창호 달성주조 대표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달성주조 막걸리

디저트 막걸리. 다소 생소한 컨셉의 이 술은 대구 달성군의 유가찹쌀로 만든 무감미료 막걸리다. 달콤한 맛과 신맛의 균형이 딱 맞아 포그막(fogmag)이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이 막걸리는 놀랍게도 신생양조장에서 만든다. 달성주조의 석창호(38) 대표가 주인공이다.

그는 4년 전 10년 이상 해오던 수산물유통업을 그만두고 전통주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의 전통주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수료하고는 청년들끼리 모여 설립한 막걸리양조장에서 1년 정도 근무하며 경험도 쌓았다.

달성군에 자리를 잡은 건 야무진 계획이 있어서다. "대구엔 탁주 분야의 지역특산주 면허가 없었습니다. 내가 한 번 해보자 싶었죠" 지역특산주로 면허를 받으면 인터넷판매가 가능하고 세제혜택도 받을 수 있다. 유가찹쌀을 사용한 포그막도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아 주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다. 6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시장 반응은 괜찮은 편이다. 출시 1년인 내년 6월까지 양조장 가동률(월 기준 생산량 1만병) 50%가 목표다.

포그막
포그막

달성주조의 막걸리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신맛을 내는 맥주효모인 사워효모를 쓴다. 의문점은 남는다. 전통누룩을 쓰지 않는데도 전통주일까? 섣부른 결론부터 낼 일은 아닌 듯하다. 이미 많은 지역특산주가 효모를 사용하고 있고 이들이 전통주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어서다.

석 대표가 전통누룩을 고집하지 않는 건 새로운 개념의 막걸리로 서양의 와인이나 위스키를 대체할 만한 우리술을 만들고, 또 기회가 되면 넓은 시장인 세계로 나가고 싶어서다.

생산단가가 높지만 전내기술을 고집하는 이유도 남다르다. 보통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18% 이상으로 생산해 물을 타서 6% 정도의 저도주로 만든다. 이러면 맛이 밋밋해지기 때문에 감미료를 첨가해 맛을 낸다. 포그막은 다르다. 애초부터 알코올 도수 10%로 낮춰 원주를 만든다. 물을 타지 않는 전내기이기 때문에 단맛과 신맛이 훨씬 더 잘 살아있는 술이 나온다.

야무진 계획도 세워뒀다. "달성군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해서 해남의 해창막걸리, 울산의 복순도가 같은 대구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을 만들 겁니다"

박운석
박운석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