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초고령사회(超高齡社會, 65세 이상 인구가 국민의 20% 이상)화가 점점 빨라지는데 반해 이를 감당할 재정 마련이나 사회적 안전망 구축은 속도를 내지 못해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노인 빈곤이 심화하고 일자리를 둘러싼 노인 간, 노인-젊은 세대 간 갈등이 잇따르는가 하면 절도, 살인, 성폭행 각종 범죄로 내몰리고 있다.
◆부양받지 못하는, 빈곤에 내몰리는 노인들
"집 밖에 나가는 순간 다 돈인데..."
대구 서구 비산동에서 단칸방 생활을 전전하는 박동섭(가명·69) 씨 집 문은 한 달에 단 세 네 번 여닫힌다. 박 씨가 치과 진료를 받을 때 말고는 언제나 굳게 닫힌 채다.
박 씨도 젊은 시절에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IMF 외환위기로 그는 삶에서 평범을 잃었다. 가족도 친구도 떠났고 빚더미만 남았다. 그를 찾는 건 주변 복지관 직원뿐이다.
그가 매달 손에 쥐는 생활비는 80만원이다. 젊을 때 넣었던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덕에 그나마 생계를 이어간다.
고혈압과 협심증, 관절염 탓에 일거리도 찾지 못한다. 그보다 건강한 또래 노인들이 일자리를 독차지한 탓에 박 씨는 마을 폐지를 줍는 일조차 다른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박 씨는 "한 평생 욕심 없이 남들만큼만 살려 노력했지만 결국 지금 서 있는 곳이 가장 밑바닥"이라며 "외로움이 가장 힘들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가족도, 친구도 처음부터 만들지 말걸 그랬다"고 한탄했다.
3형제의 어머니 김순희(가명·82) 씨도 여생이 고독하긴 마찬가지다. 힘겹게 입학한 초등학교를 반년 만에 그만두고 가족만 보며 평생 일했지만 이제 김 씨를 찾는 사람은 없다.
생활비는 물론, 몇 년 전 다친 허리 수술비 역시 세 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보태주지 않았다. 김 씨가 전셋집 보증금을 빼 카드 빚을 대신 갚아줬던 아들도, 대기업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아들도 묵묵부답이긴 마찬가지였다.
김 씨가 기초노령연금으로 받는 생활비 50만원도 대부분 병원비로 나간다.
김 씨는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더니 이렇게 버림받을 줄 몰랐다. 자식만 바라보며 뼈 빠지게 일했지만 남은 건 병든 몸 뿐"이라며 "병원 신세를 져 가며 목숨만 부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사는 게 오히려 고통"이라고 털어놨다.
◆부양의 양극화…'경제활동' 필수지만 일자리도 없어
준비되지 않은 급속도의 고령화는 사회의 노인 부양 부담을 점차 키운다. 자녀 세대 개개인의 노력으로도, 중앙·지방정부의 재정적 부양책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부양의 양극화도 문제시된다. 특히 빈곤층 노인 생계는 국민연금·사연금과 같은 노후 안전망조차 온전히 떠받치지 못한다. 자녀에게 의존하기 힘든 노인도 많다 보니 노인 경제활동이 불가피하다는 인식도 점차 커진다.
노인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22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노인 10명 중 7명(74.2%)은 경제적 목적으로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했다.
응답자 과반(54.1%)이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 동기로 '생계비 마련'을 꼽았고, '용돈 마련'이라고 응답한 노인도 전체의 20.1%를 차지했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지역사회 공익에 기여하거나, 지역사회 돌봄·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관련 업무능력을 십분 활용하는 등 형태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업 참여자로 확정되기까지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 7월 기준 국내 전체 노인일자리사업에 신청하고도 즉시 선발되지 못한 대기자는 13만7천689명으로 집계됐다. 대구는 1만534명, 경북은 1만2천61명이었다.
노인일자리사업에 선발되지 못한 대기자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힘들었다'(45.2%)고 응답했다.
한때 노인 전유물이던 공공근로형 일자리 또한 최근에는 중·장년은 물론 청년까지 뛰어드는 상황이다. 노인들은 단순노동 분야에서조차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셈이다.
대구 한 구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기업 불황과 자영업자 생계곤란이 심각했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줄어든 뒤로 중·장년과 청년들이 지금껏 공공근로에 신청서를 내밀고 있다. 가로변 청소, 폐기물 수거 보조 등 체력이 필요한 분야에선 노인 지원자들 경쟁력이 떨어져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범죄에 내몰리기도…5년 새 대구경북 생계형 범죄 ↑
부양 받지 못하는 노인은 끝내 빈곤과 스트레스, 고독에 휩싸인다. 심한 경우 범죄에 내몰리기도 한다. 처지에 따라 생계형(강·절도 및 사기·횡령·배임) 또는 일탈형(성범죄) 또는 분노형(살인) 등 범죄 유형도 다양하다.
실제 대구·경북경찰청 집계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 범죄가 점차 늘거나 수년 째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5년(2018~2022년) 간 절도 및 살인 범죄가 특히 증가했다.
이 기간 대구에선 노인 절도 피의자가 2018년 643명에서 지난해 1천4명으로 56% 늘었다. 경북에서도 483명에서 920명으로 2배까지(90.5%↑) 뛰었다. 같은 기간 노인 살인 피의자 또한 대구는 3명에서 6명으로, 경북은 5건에서 10건으로 늘었다.
강간·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봐도 대구에선 2018년 72건에서 2022년 87건으로, 경북에선 70건에서 80건으로 각각 증가 추세를 보였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