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해외 석학들의 논쟁이 내기로 이어졌다. 영국 출신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와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가 당사자들이다. 주제는 20년 뒤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느냐였다.
퍼거슨이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앞서왔다"고 하자 린이푸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반박하며 200만 달러를 걸겠다고 했다. 그는 투자·교역 확대, 풍부한 자원, 넉넉한 외환보유고 등을 꼽으며 중국의 매년 6% 성장을 자신했다.
반면 퍼거슨은 레버리지 성장전략의 한계, 기업가 활동 위축 등으로 중국의 성장은 더뎌질 것이라고 맞섰다. 또 "경제가 성장해도 민주주의로 이행이 안돼 비전이 밝지 않다"고도 했다. 다만 내기 금액은 부담스럽다며 2만 위안(약 366만원)으로 낮췄다.
이들은 20년 뒤 만나 결과를 확인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시장은 벌써부터 퍼거슨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지난 40년 동안 급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에 들어섰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라는 개념까지 유행이다.
'G2' 중국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방역비용, 미국과의 기술전쟁, 과부하가 걸린 부동산시장, 인구 감소 등을 제시했다.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까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암울한 통계는 쌓여만 가고 있다. 수출·물가·소매판매·산업생산·실업률 등 중국의 최근 경제지표는 부진하기만 해 경기 침체 속에 물가까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대형 부동산업체들의 부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6년 만에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 역시 그만큼 위기라는 방증이다. 껄끄럽기만 한 미국·일본에게도 빗장을 풀어준 걸 보면 관계 정상화 차원은 분명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첫 3년 연속 5% 미만 성장이란 참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시한폭탄이라고 평가한 중국의 침체는 우리에게도 위기다. 수출 감소, 환율 상승 등으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대(對) 중국 견제망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회의 이후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번영하고 발전하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년 연속 1%대 성장이 유력한 한국 경제가 외교만으로 재도약할 순 없다.
대외전략 못지않게 진영 갈등 속에 사라져버린 우리 내부의 역동성을 되살릴 개혁이 시급하다. 중국 리스크에 대비할 단기 대책은 물론 미중 경쟁 이후 상황도 고민해야 한다. 임기 내 과업에 대한 결정과 함께 임기 이후에도 경제 근간이 될 일들을 해둬야 한다.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는 공저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서 부채로 일군 호황은 늘 금융위기로 막을 내리지만, 사람들은 그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착각을 한다고 지적했다. 위기징후를 발견해도 비현실적으로 낙관하면서 미리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결코 자만에 빠지지 않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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