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공산은 천상의 화원] 가을꽃들로 수놓는 9월의 하늘정원

손등을 툭툭, 악수 건네는 '키 큰 가을꽃'

투구꽃
투구꽃

곧 9월이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이다. 열네번째 절기인 처서가 지나고 식물들이 더이상 자라기를 멈추는 때이다. 꽃 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갈바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서둘러 자란다는 뜻이다. 곡식뿐만 아니라 가을의 식물들은 모두 그렇다. 빨리 꽃을 피우고 빨리 영글어야 한다. 어정거리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하는 가을꽃은 어떻게 다를까?

기본적으로 키가 크다. 봄꽃은 서둘러 꽃부터 피느라 발목 언저리에 겨우 닿아 있지만, 가을에 피는 풀꽃들은 사람만큼 키가 큰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가을꽃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굳이 발치를 내려다보지 않아도 되고 쪼그리고 앉을 필요도 없다. 산 능선을 걷다 보면, 벌써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핑계 삼아 손등을 툭툭 치며 먼저 알은체하는 꽃들을 만날 수 있다.

팔공산의 가을에는 어떤 꽃이 필까? 어떤 꽃들이 사람에게 다가올까?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눈길이 가는 선명하고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가을꽃들이 팔공산의 숲 가장자리와 능선을 수놓는다. 악수를 청해오면 손을 맞잡아도 좋을 가을꽃들이 팔공산에 가득한 계절이 바로 9월이다. 그들을 친구삼아 산길을 걷기 좋은 계절이다. 해발 1,000미터가 넘으면서도 비교적 접근이 쉬운 팔공산 하늘정원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가을꽃과 데이트를 해보는 건 어떨까.

투구꽃
투구꽃

◆투구를 닮은 투구꽃

투구꽃은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동봉으로 가는 길이나 하늘정원에서 비로봉 가는 길에서도 만나진다. 그 외에도 팔공산의 다양한 등산로에서 가을이면 만날 수 있다. 투구꽃은 장수들이 전장에 나갈 때 쓰는 투구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꽃은 보통 진한 보라색이기도 하고, 미색이 돌기도 하고, 완전히 미색인 경우도 있다. 어떠한 창도 화살도 뚫지 못할 것 같은 투구 안에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꽃술들이 있다.

투구꽃은 햇볕이 너무 강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식물들이 약간의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에서 주로 핀다. 줄기는 곧게 자라지 않고 보통 휘어진다. 그래서 키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투구꽃을 초오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한약재명이다. 약재로도 쓰이지만 아주 강한 독을 품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함부로 먹어서는 안되는 식물이다.

고려엉겅퀴
고려엉겅퀴

◆곤드레나물, 고려엉겅퀴

고려엉겅퀴는 고려 즉 한국에서 나는 엉겅퀴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이다. 고려엉겅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곤드레라는 이름이 함께 나타난다. 곤드레나물은 강원도에서 부르는 고려엉겅퀴의 지방명이다. 고려엉겅퀴라는 이름은 잘 몰라도 곤드레나물은 많이들 알고 있다. 봄에 새순을 채취해서 나물로 사용한다.

그 나물로 지은 밥이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로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고령엉겅퀴는 보통 한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꽃이 핀다. 꽃은 밝은 자주색으로 엉겅퀴와 닮았다. 산골짜기 초입에서도 자라고 능선에서도 잘 자란다. 하늘정원처럼 높은 곳에서는 산기슭보다 키가 작다. 9월에 하늘정원에 가면 엉겅퀴보다는 작지만 엉겅퀴를 닮은 꽃이 대체로 고려엉겅퀴이다.

구절초
구절초

◆단아한 자태의 구절초

구절초는 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의 자생 국화이다. 전국의 산지 높은 곳이나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란다. 팔공산 하늘정원을 비롯해 긴 능선길을 걷다보면 심심찮게 만나진다. 큰 바위의 틈새나 가장자리에 작은 군집을 이루어 비교적 적은 흙에도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 잎은 국화와 비슷하고 꽃은 하늘을 향해 흰색으로 피며 간혹 분홍색이 돌기도 한다. 식물체 전체에서 국화 향기가 나고 약용으로도 사용된다.

구절초라는 이름은 중양절이 되면 마디가 아홉 개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무리를 지어서 피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서 식물원이나 수목원에서 다양한 구절초류들을 많이 식재한다. 관상용으로 개량한 화려한 색의 국화들보다는 소박하지만 그 자태가 단아하여 반복해서 보아도 질리지 않는 꽃이다.

물봉선
물봉선

◆손대면 톡 터지는 물봉선

물을 좋아하고 봉선화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물봉선이다. 이름처럼 작은 개울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항상 개울가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하늘정원과 같은 산 능선에서도 살고 있고, 임도 가장자리에서도 자란다. 공중습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봉선은 진한 자주색의 통꽃이 피는데 안쪽에는 자주색 반점들이 있다. 꽃통은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꽃뿔이 되고 그 모양은 소라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안으로 돌돌 말려 있다.

줄기 윗부분에 여러 개 달린 꽃들은 아래쪽에서부터 피어 올라간다. 윗부분의 꽃이 필 즈음에 아래쪽은 벌써 열매가 익는다. 통통하게 부푼 열매를 손으로 건드리면 톡하고 터져서 씨앗이 튀어 나간다. 손끝에서 터지는 씨앗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 느낌이 재미있다. 물봉선 씨앗을 안 터트려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터트려 본 사람은 없다.

마타리
마타리

◆곤충들의 꽃방석, 마타리

가을꽃은 보라색, 자주색 계열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 특이하게 샛노란 색을 자랑하는 식물이 마타리다. 마타리는 키가 아주 크다. 숲 가장자리나 산기슭의 풀밭에서 자라면 2미터 가까이 자라기도 한다. 모든 식물이 그렇듯이 해발고도가 높아지면 키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팔공산 능선길에서는 사람보다 큰 키의 마타리는 자주 만나지지 않는다. 그래도 워낙에 큰 키가 어디로 가겠는가.

선명한 노란색으로 하늘을 향해 자잘한 꽃들이 달린 마타리는 눈에 잘 띈다. 원줄기가 길게 쭉 자라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져 꽃이 달린다. 밝고 화사한 꽃이 눈길을 끌지만 만지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냄새가 그다지 향기롭지 않기 때문이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데 그런 냄새조차도 좋아하는 곤충들이 있다. 가을날 샛노란 마타리의 편평한 꽃방석 위에는 다양한 곤충들이 논다.

천남성열매
천남성열매

◆"눈으로만 보세요" 천남성

천남성은 투구꽃 못지않게 강한 독을 가졌다. 땅속 덩이줄기의 맹독을 약으로 사용했다고 하고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고도 전해진다. 천남성은 비교적 흔하게 자란다. 팔공산 자락의 계곡 가까이 습한 곳이나 숲속 그늘에서 자주 눈에 띈다. 꽃은 봄에 피는데 잎과 함께 전체적으로 초록색인 경우가 많다. 불염포라고 불리는 부분이 야구모자의 챙처럼 앞으로 구부러진다. 9월쯤 되면 뭉뚝한 옥수수같은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

신기하게 생긴 열매에 호기심이 발동할 수 있지만 만지는 것은 말리고 싶다. 화려한 열매에 독이 있기 때문이다. 열매 알갱이 하나가 터져서 피부에 묻기라도 하면 발진이 생길 수 있다. 그늘진 숲 바닥에서 옥수수같은 빨간 열매를 만나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

김영희 작가
김영희 작가

글·사진 산들꽃사우회 (대표집필 김영희작가,사진=박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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