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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22>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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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김후신(1735-1781?),
김후신(1735-1781?), '통음대쾌(痛飮大快)', 종이에 담채, 33.7×28.2㎝,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주흥에 겨운 술꾼의 웃는 얼굴과 몸도 못 가누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덩달아 유쾌하게 하는 풍속화다. 익살스런 필치의 생생한 표정과 단숨에 그은 옷자락이 노련하다. 갓은 어딘가에 버려져 흐트러진 상투가 드러난 맨머리 바람이고 바지의 대님도 달아났다.

주인공을 양 옆에서 팔과 어깨를 잡아 부축하고, 또 한 친구는 뒤에서 등을 떠민다. 4명의 인물을 화면의 중심부에서 앞쪽으로 그려 마구 내달리는 운동감이 펄럭이는 도포자락과 어울려 더욱 실감난다. 위쪽의 나무들은 아랫부분만 듬직하게 그린 구도여서 인물과 배경의 동정(動靜)이 균형을 이룬다. 나무들 사이로 도랑이 흐른다.

'실컷 마셔 통쾌하게 대취하다'라는 제목의 '통음대쾌'는 화원화가 김후신의 작품으로 통한다. 낙관이 없으나 그림 바깥의 테두리에 '이재(彛齋) 김후신 선생 풍속도'라는 서예가이자 수집가인 소전 손재형의 배관기(拜觀記)가 있기 때문이다.

명시를 남긴 시선(詩仙)이자 술을 사랑한 주선(酒仙) 이백은 술이 제공하는 몰아(沒我)의 흥취를 '월하독작(月下獨酌)' 4수로 지었다. 그중 두 번째 시가 바로 이 주인공의 심사이리라.

천약불애주(天若不愛酒)/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부재천(酒星不在天)/ 주성(酒星)이 하늘에 있을 리 없고

지약불애주(地若不愛酒)/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응무주천(地應無酒泉)/ 주천(酒泉)이 마땅히 땅에 없으리

천지기애주(天地旣愛酒)/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하니

애주부괴천(愛酒不愧天)/ 술을 사랑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이문청비성(已聞淸比聖)/ 청주는 성인에 비한다고 하고

복도탁여현(復道濁如賢)/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하네

현성기이음(賢聖旣已飮)/ 성인과 현인을 이미 마셨으니

하필구신선(何必求神仙)/ 어찌 꼭 신선을 바라겠는가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한 말이면 자연과 합하네

단득주중취(但得酒中趣)/ 다만 취중의 흥취를

물위성자전(勿爲醒者傳)/ 깨어 있는 자에게 전하지 말게나

신선이 부럽지 않은 도도한 취흥! 석 잔이면 대도(大道)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합일하니 어떻게 그가 마시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래서 취태백도(醉太白圖)가 고사인물화로 그려졌다. 김후신이 그린 것은 또 한 명의 주태백(酒太白)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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