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94>어느 사랑 이야기

질 바슐레 지음·나선희 옮김/책빛 펴냄

질 바슐레 지음·나선희 옮김 / 책빛 펴냄
질 바슐레 지음·나선희 옮김 / 책빛 펴냄

자료실에 근무하는 사서들에게는 종종 책을 찾아달라는 이용자들이 오곤 한다. 그러면 최대한 찾아드리고는 하는데, 어느 날 한 이용자가 스마트폰 속 사진을 내밀며 물었다. "이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전에 봤던 책인데, 도저히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알고 있던 책은 아니었지만, 오지랖이 꽤 넓은 편인 나는 꼭 찾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보여주신 사진 속 그림에는 아기자기한 배경에 장갑 커플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장갑이 주인공인 그림책이라는 것과 한 장의 그림뿐이었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장갑 그림책'을 검색해 이미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거르고 걸러 결국 그 그림을 찾아내어 책을 알려드리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이용자들의 이런 작은 감사 표현은 늘 뿌듯하고, 힘이 나게 한다.

황가인 경상북도교육청청도도서관 사서
황가인 경상북도교육청청도도서관 사서

이용자가 다시 보고 싶어 했던 책은 질 바슐레의 '어느 사랑 이야기'라는 그림책이다. 주방용 고무장갑을 의인화한 책으로, 주인공 외에도 일상의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어 세밀하고 재치있게 그려냈다. 독특한 그림은 어린이는 물론 성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을만 했다. 책의 내용은 수영 선생님인 조르주와 수중 발레 선수였던 조제트가 수영장에서 만나 첫눈에 반하고,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아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겪고, 다투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사는 아주 평범한 사랑 이야기, 즉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조제트는 손자 손녀들을 모두 앉혀 놓고 조르주와의 오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할아버지는 기타 연주를 잘하지 못했지. 틀린 데도 많았고, 실은 할머니는 '금지된 장난'도 좋아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단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말하지 않았거나 좋아하는 척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함께 지내온 평범한 시간 속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는 것, 그리고 인생이라는 긴 여정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나이가 들수록 그 평범한 것이 참 어렵고, 그래서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 가는 중이라 마지막 장면이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질 바슐레의 그림책은 독창적인 캐릭터와 유머, 풍자까지 놓치지 않는다. 예술 작품과 인물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작품끼리도 숨은 그림처럼 엮여 있어 그림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아는 사랑 이야기' 외에 작가의 다른 작품도 소개하고 싶다. 자신만의 속도로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달팽이의 세계를 그린 '후다다닥 기사'와 유행이 지난 유니콘 장난감을 주인공으로 현대 사회의 욕망을 조명한 '보세주르 레지던스'도 함께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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