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모두 나오는 신라 김씨 왕계의 시조이자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65~?) 설화를 그린 '금궤도'다. 인조의 어제가 포함된 제화가 있어 인조가 1636년 봄 이 그림을 그리게 했으며, 그림은 창강(滄江) 조속이, 글씨는 창주(滄洲) 김익희가 썼음을 알려준다.
금빛 나는 궤짝인 금궤에서 알지(아이)가 나왔으므로 금(金)을 성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져왔지만 그림으로는 처음 그려진 것 같다. 조선 중기의 주요 화가인 조속은 어명으로 맡게 된 막중한 과제를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완성했다. 수묵화로 까치, 매화를 잘 그린 문인화가인 조속이 비단에 진채의 청록산수화로 한 폭의 역사화를 완성해낸 실력이 먼저 놀랍다.
붉은 끈으로 매단 금빛 상자, 신비스러운 형태의 나무,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한 하얀 닭을 좌우의 언덕과 계곡을 배경으로 중심부에 그렸다. 구름 위로 멀리 청록색 산봉우리들이 이 장면을 호위하는 듯하다. 조속은 핵심인 금궤를 화폭 정중앙에 위치시켰고, 금궤가 꼭짓점을 이루도록 주요 요소인 닭과 인물을 입체적인 삼각 구도로 배치했다. 붉은 벼슬의 하얀 수탉이 나무 뒤쪽에 있고, 계림(鷄林)으로 들어가 이를 발견한 호공(瓠公)과 파초선을 든 시종이 앞쪽에서 다가간다. 호공은 마치 고사인물화의 주인공인 듯하다.
왕이 어떤 그림에 대한 글을 직접 짓는 경우도, 그 글에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지 않다. 어제 제화는 왕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문화적 장치를 통해 드러내는가를 보여주는 행위다. 인조는 첫머리에 "신라 경순왕 김부의 시조"가 금궤 안에서 나왔다고 하며, "석(昔)씨의 뒤를 이어 신라의 임금"이 됐고, "그 후손인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했다"고 했다. '금궤도'는 김알지 탄생으로 인한 왕계 교체를 나타내고, 인조의 제화는 경순왕의 신라 멸망을 강조한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했다. 왕의 아들이 아니었으므로 정통성 시비가 없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부친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하는 일을 추진해오다 재위 13년 마침내 성공한다. 다음 해 봄 '금궤도'가 그려진다. 인조가 이 그림을 그리게 하고 어제를 지은 것은 자신의 정통성과 사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중의 포석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금계도'는 해석의 다양성이 열려 있는 역사사료인 동시에 뛰어난 작품인 한국미술사의 역사기록화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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