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공산은 천상의 화원]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겨울나무의 외투, 수피

사람의 외투에 해당하는 나무의 수피는 눈이 쌓이고 상고대가 얼어붙어도 겨울 추위로부터 나무를 지킨다.상고대가 핀 참나무류
사람의 외투에 해당하는 나무의 수피는 눈이 쌓이고 상고대가 얼어붙어도 겨울 추위로부터 나무를 지킨다.상고대가 핀 참나무류

한겨울이 다가오면서 두꺼운 외투가 잘 팔리는 계절이 되었다. 삼한사온은 무너졌지만 따뜻한 날과 차가운 날이 반복되고 있다. 기온의 차가 커서 어떤 외투를 입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날도 많다. 사람에 따라서 얇은 외투로도 갑갑함을 느끼기도 하고 두텁게 입고도 춥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길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외투가 천차만별이다.

나무는 어떨까? 나무들도 사람의 외투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무의 껍질, 수피(樹皮)다. 수피는 기본적으로 외부의 수분이나 다른 기타 물질들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외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잘한 가지를 감싸고 있는 얇은 수피도 눈이 쌓이고 상고대가 얼어붙어도 겨울 추위로부터 나무를 지킨다.

긴 겨울동안 수피의 임무이기도 하다. 수종에 따라 굴참나무처럼 두툼한 코르크로 감싼 나무도 있고, 자작나무처럼 얇은 종잇장 같은 나무도 있다. 폭신폭신하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하다.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런 수피의 매력에 빠지기 좋은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팔공산 국립공원의 수많은 나무 중에 특히 수피가 매력적인 나무들은 누가 있을까? 수피는 화려한 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눈길이 가지 않지만 잘 살펴보면 그동안 몰랐던 겨울나무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기회에 팔공산 겨울산행에서 나무들의 외투에 관심을 좀 가져보면 좋겠다. 그중에 특히 재밌는 수피를 가진 나무를 소개하고자 한다.

노각나무 수피
노각나무 수피

◆군복의 무늬를 닮은 수피, 노각나무

노각나무라고 하면 보통 늙은 오이를 먼저 떠올린다. 누렇게 익은 늙은 오이 노각은 노각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이름만 같을 뿐이다. 노각나무는 건조하고 해가 많이 드는 곳보다 계곡 주변의 습도가 좀 높은 곳을 좋아한다. 여름에 커다란 흰 꽃을 드문드문 피우면 아주 매혹적이다. 그럴 때는 꽃을 보느라 수피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한다. 겨울이 되어야 그 수피가 돋보인다.

가장 최근에 수피가 떨어진 자리는 늙은 오이와 색이 비슷하다. 수피가 떨어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그 색이 다르다. 회색부터 누런색, 그 중간색 등 다양하다. 불규칙하게 생긴 얼룩덜룩한 무늬들을 보면 군인들의 군복이 떠오른다. 군복도 세월에 따라 변화가 있었지만 몇 가지 색의 얼룩무늬가 있는 것이 서로 닮았다.

노각나무는 녹각(鹿角)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슴의 뿔과 같이 목재가 단단하여 농기구를 만들거나 목기(木器)를 만들었다. 매끈하고도 단단한 노각나무를 만나면 어김없이 그 줄기를 쓰다듬는다. 한국특산식물로 우리나라 숲에서만 자라는 귀한 나무이기도 하다.

굴참나무 수피
굴참나무 수피

◆지붕을 일 때 쓰던 굴참나무

참나무 종류는 우리나라의 산에서 만나지는 가장 흔한 나무들이다. 섬지방에는 겨울에도 푸른 잎이 달려 있는 상록성 참나무류도 있지만, 육지에는 가을이면 다 낙엽이 지는 나무들이다. 참나무류 중에서 수피가 가장 두텁고 단단한 것이 바로 굴참나무이다. 상수리나무와 더불어 도토리도 크고 실하다. 가을에는 도토리묵의 좋은 재료가 된다. 가을이 더욱 깊어지면 단풍이 낙엽되어 떨어지고 나뭇가지들이 드러난다. 아름드리 원줄기에도 햇살이 든다. 수피의 깊은 골은 연한 붉은색을 띠고 밝은 회색과 조화를 이루어 꽤 보기가 좋다.

깊게 골이 파진 딱딱한 수피는 지붕을 이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굴참나무의 껍질을 벗겨 무거운 것으로 편평하게 눌러서 말려 사용했다. 잘 마르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기와를 얹듯이 켜켜이 얹어서 지붕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집을 굴피집이라고 부른다. 굴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산간지방에서 많이 짓던 집이다.

팔공산 어느 작은 골짜기에서 오래된 마을터를 본 적이 있다. 어쩌면 그런 마을의 집들이 굴피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황벽나무 수피
황벽나무 수피

◆겉은 폭신폭신 속은 노란 황벽나무

산에서 황벽나무를 만나도 사실 수피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만져보기 전에는 말이다. 황벽나무를 확인하려면 만져봐야 한다. 골이 패인 수피를 엄지손가락으로 세게 꾹꾹 눌렀을 때 폭신폭신하면 바로 황벽나무다. 황벽나무는 수피를 벗기면 속이 노란색이다. 누른 정도가 아니라 노란 물감도 울고 갈 만큼 샛노란 색이다. 오래전 산에서 우연히 그 모습을 보았다. 껍질을 벗겨진지 얼마 안 되는 황벽나무를 만났다.

황벽나무 수피
황벽나무 수피

누군가가 약재로 쓰기 위해 벗긴 모양이었다. 속껍질은 노란색 물을 들이는 염료로 사용했고, 중요한 서책에 방충효과를 위해서 사용하기도 했고, 약용으로도 쓰였다. 다양한 쓰임새로 많이 채취되어 요즘은 커다란 나무를 만나기는 어렵다. 그래도 팔공산 숲에는 드물지만 굳건하게 살고 있다.

황벽나무는 책을 수백 년 동안 보관해도 벌레가 먹지 않을 만큼 특히 방충효과가 강하다. 그래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봄에 나온 새잎이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가끔 있다. 팔공산 숲에서 황벽나무를 만나더라도 수피는 눌러보되 잎을 만지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박달나무 수피
박달나무 수피

◆목재뿐 아니라 수피도 야물게 생긴 박달나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박달나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박달나무는 사람과 가까웠다. 목질이 매우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해서 여러 용도로 이용되었다. 수레바퀴를 비롯해서 홍두깨를 만들기도 했다. 머리빗이나 악기를 만들 때도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도마로는 박달나무 도마를 최고로 친다.

요즘이야 나무도마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칼로 내리쳐야 하는 도마는 단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방 도구이다. 요즘도 박달나무 도마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달나무 역시 치밀한 조직과 견고함 때문에 오히려 위기를 겪었다. 필요에 의해 많이 잘라서 그런지 숲에서도 큰 나무를 만나기는 어렵다.

아름드리 큰 나무는 수피가 거칠게 벗겨지듯이 일어나지만, 아직 어린나무는 매끈하며 자잘한 세로무늬가 있는 어두운 고동색이다. 딱 보기만 해도 야물다는 느낌이 든다.

물박달나무 수피
물박달나무 수피

◆터실터실 물박달나무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와 마찬가지로 자작나무과(科) 자작나무속(屬)에 속한다. 두 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사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닮은 면도 있지만 서로 다른 면도 있다. 일단 물박달나무는 수피가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다. 그다지 큰 나무가 아니라도 껍질이 터실터실 일어난다. 나무껍질은 물에 젖어도 불에 잘 탄다고 알려져 있다. 자작나무도 수피에 기름기가 많아서 불이 잘 붙는다. 물박달나무도 마찬가지다.

박달나무에 비해 우리나라 산에 흔해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물박달나무는 수분 함량이 높다. 그래서 고로쇠나무처럼 봄에 수액을 채취하기도 한다.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만큼 박달나무처럼 단단하지는 못하다.

물박달나무는 보통 여러 그루가 모여 자라는 경향이 있다. 비록 거칠게 일어나지만 밝은 색깔의 수피 덕분에 모여 있으면 꽤 아름다운 나무다. 물박달나무라는 이름을 가져서 박달나무와 비슷할 것 같지만 사실은 자작나무나 사스래나무를 더 닮았다.

김영희 작가
김영희 작가

글 : 산들꽃사우회 (대표집필 김영희작가),사진 : 산들꽃사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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