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아들처럼 나를 아껴주신 선생님…멋진 오페라 무대로 보답할게요"

이현석 한국음악협회 경상북도지회 회장의 스승 故 성악가 정광 씨

이현석 씨 결혼식 사진. 중앙 뒷쪽 정광 선생님, 앞쪽 오른쪽 이현석 씨, 왼쪽 아내 권수정 씨. 이현석 제공
이현석 씨 결혼식 사진. 중앙 뒷쪽 정광 선생님, 앞쪽 오른쪽 이현석 씨, 왼쪽 아내 권수정 씨. 이현석 제공

십여년 전 오페라 '사랑의 묘약 그 이야기'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당시 많은 관객들로부터 커튼콜을 받으며 마무리되는 순간, 나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성악가 정광 선생님과 늘 얘기를 하던 내 방식의 공연을 완성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유학을 다녀온 후 이런저런 오페라 연출을 하며, 항상 가슴 한구석에 '조금은 더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의 오페라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나에게 정광 선생님은 늘 응원해 주셨습니다. "너의 그런 생각이 우리 오페라계를 조금은 더 발전시킬거다." 첫 공연을 마치고 선생님을 찾아 뵀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대견해 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나의 형님이 학교에서 단체로 음악회를 보고와 "오늘 출연자 중에 정광이라는 테너가 있는데, 진짜 노래 잘하더라. 줄리아드 학교를 졸업했고 파바로티도 인정한 성악가란다"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이 정광 선생님을 처음 알게됐습니다.

성악가를 꿈꾸던 나는 '나도 언젠가는 그 분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막연한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다행히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설득해 주셔서 성악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후 정광 선생님께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는 교사 월급으로 형님 두명을 서울에서 대학 공부를 시키느라 경제적 부담이 컸습니다.

"니가 그렇게 원하니, 한번만 갔다 와라." 아버지께서 어렵게 한번의 레슨비를 마련해 주셔서 선생님과의 첫 수업이 이뤄졌습니다. 떨리는 마음에 여러 실수를 했지만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 모르게 불러서 "현석이 너는 다음주에 한번 더 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선듯 대답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선 내가 드린 봉투에서 레슨비의 절반을 돌려 주시며 "다음주엔 요거 들고 오면 되겠네"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나의 속마음을 다 읽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 다음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만드시며 레슨비도 제대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대학시절 나의 또 다른 소질을 발견하시곤 연출을 공부해 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졸업 후 유학 나가 있을 때 나를 부르셔서 모교의 개교 50주년 오페라 공연 조연출도 맡겨 주셨습니다.

그후 음악활동을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 못했던 어느날,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현석아, 내일은 5시에 와라." 나는 다음날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저를 맞으셨고,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얘기 도중 선생님께서 전화를 한 통 받으시곤 "안되겠다. 다음에 레슨하자"며 저를 돌려 보내셨습니다.

이 모습이 선생님을 생전에 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후에 들은 소식은 선생님께서 치매가 와서 상황 판단을 잘 못하신다. 그리고 얼마 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저의 모습이 있기까지 저를 아들처럼 아껴 주셨던 선생님의 지지와 믿음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제가 만든 작품에 선생님을 꼭 한번 무대에 모시겠다는 약속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2월 16일은 선생님의 3주기입니다. 이 글로 그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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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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